박인선 파크사이드재활병원 원장, “재활병원 진짜 목표는 환자의 가정ㆍ사회 복귀”
지난 3월 초, 부산 남구 파크사이드 재활의학병원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남구 보건소의 가정방문 간호사로부터 온 전화였다.
“거동을 전혀 못하는 환자의 몸이 계속 굳어지고 있는데 치료를 받게 할 수가 없어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2층인데다 경사가 급한 계단도 있어서 모시고 내려올 수조차 없어요.”
파크사이드 박인선 원장은 3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간호사, 사회복지사와 함께 루게릭 환자 A씨의 집을 찾아가 보니,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은 쓰레기도 쌓여 있고 지저분했다. A씨는 희귀난치질환 판정을 받은 후 치료도 포기하고 가정에서 고립된 상태로 지내 왔다고 한다. 가정방문을 한 남구보건소 소속 사례관리 간호사는 A씨에게 병원 치료와 장애 진단 신청의 중요성을 꾸준히 설득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나 좀 도와 달라”며 A씨가 먼저 진료를 받겠다고 요청했다.
A씨에 대해 남구청과 보건소,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긴급 복지지원에 나섰다. 지역사회 모금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 1층에서 통원 치료가 가능하도록 새 주거지도 찾는 중이었다. 새 집을 찾을 때까지 증상 완화를 위한 입원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다. 질환 자체의 특성상 완치가 어렵고 갈수록 몸이 굳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기능이 남아 있다면 재활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고 악화 속도도 늦출 수 있다.
이 재활병원에서는 환자가 입원하기 전에 반드시 퇴원 후까지 염두에 둔 회의를 보호자와 함께 연다. A씨의 경우 퇴원 후의 삶을 생각해 보면 보호자뿐 아니라 지자체 복지 담당자들과의 협의가 필요했다. 박 원장은 병원에서 남구청과 보건소, 장애인복지관 소속 직원 및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 여러 관계자와 함께 회의를 열고, A씨의 입원과 퇴원 후 치료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3월 15일 입원 당일, A씨는 복지사들의 도움을 받아 오랜만에 목욕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한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으니 전보다 신체 기능도 크게 나아졌고 정신적으로도 깊은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구청에서는 깨끗하고 1층에 위치한 주거지를 마련했다.
지난달 중순 퇴원한 A씨는 평소 활동보조인의 지원을 받고 1주일에 2번씩 병원으로 외래 치료를 받으러 온다. 박 원장이 새 집을 방문해 보니 A씨뿐 아니라 아들까지 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행복해 했다. 박 원장은 “남구 복지관과 보건소 분들이 너무나 열심히 발로 뛰어 주셔서 성공적인 퇴원을 할 수 있었다”면서 “진정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의 한 사례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재활병원은 장애 등으로 신체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재활 치료를 해 주는 곳이다. 하지만 환자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준다는 사명감보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장기입원으로 인해 수가를 삭감할 때까지 최대한 오랫동안 입원 시켰다가 수가가 깎이면 “정부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다”면서 퇴원시켜 ‘재활 난민’으로 전락하게 하는 병원도 상당수다.
박 원장은 그러나 환자에게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 시키고 장기 입원 대신 집중 재활 치료 후 빠른 시간 안에 가족과 사회로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재활병원이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A씨처럼 환자가 처음 찾아왔을 때 보호자 인터뷰, 가족 회의는 물론 지역사회 복지서비스까지 활용해 ‘퇴원 후’의 삶을 처음부터 대비시키고 치료 계획을 설계한다.
박 원장은 “전에는 재활치료의 목표가 환자의 (신체) 기능을 최고로 좋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퇴원 후의 대책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면서 “환자는 그 상태로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아다니면서 똑같은 재활치료를 기약 없이 반복해서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환자 입장에서는 물리치료, 작업치료 등 각종 치료를 잘 해주는 병원, 퇴원시키지 않고 오래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게 됐고, 병원 입장에서는 ‘돈이 되는 환자를 많이 치료하자’는 목표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활병원의 진정한 역할은 처음부터 집으로, 사회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돌려보내는 것을 고민하고 치료하는 것”이라고 박 원장은 주장한다.
물론 이런 원칙대로 하다 보니 병원 살림은 쉽지 않다. 13년 동안 병원을 운영했지만 아직도 은행 빚을 못 갚았고, 낮은 재활 수가로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다. 다른 재활병원들도 “낮은 수가로 손해 보는 게 뻔히 보이는데 사명감만 갖고 운영하니 다른 병원이 욕 먹는다”며 곱게 보지 않는 눈치다.
박 원장 역시 현재 재활 수가로는 다른 재활병원도 이 같은 방식으로 재활병원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정부가 요양병원을 재활병원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싶어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전환 시 오히려 큰 손해를 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박 원장은 “현재 190병상의 요양병원이 재활병원으로 전환하면 한 달에 1억9,000만원의 손해를 본다고 한다”면서 “이러다 보니 재활병원이 아닌 재활요양병원이라는 변종 형태를 선택하게 되고, 결국 재활치료가 산으로 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보건복지부도 재활의료 전달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지난해부터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시범사업’을 실시 중이다. 회복기 재활병원은 환자에 대한 집중 재활 치료와 상담 등을 통한 사회 복귀를 견인하겠다는 게 목표로, 파크사이드도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시범사업이 본사업으로 전환되면 수가도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해 현실화한다는 계획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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