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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문 대통령이 삼성을 만날 때

입력
2019.05.06 03: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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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H2019043016780001300] <YONHAP PHOTO-316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발언을 마치고 내려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PYH2019043016780001300] <YONHAP PHOTO-316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시스템 반도체 비전 선포식이 열린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부품연구동(DSR)에서 발언을 마치고 내려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손을 잡았다가 지지층에 된통 당하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론에서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론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까지 보내는 모양이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오랜 만에 기업의 기(氣)를 살리는 반가운 소식이라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반성적 행보라며 반기는 기색도 엿보인다.

정반대의 평가에 청와대가 어리둥절하지 않을까 싶어 정책실 관계자에게 물었다. “대통령의 삼성전자 방문은 민간에서 일자리를 늘려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광주형일자리를 비롯해 정부가 아무리 자락을 깔아도 민간에서는 눈치만 보고 있다. 경제정책의 변화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행보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청주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것까지 감안하면 양쪽 모두 과도한 해석이다”는 게 관계자의 답변이다.

대통령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었던 자칭 ‘일자리 정부’에서 고용지표는 그 동안 최악이었다. 지난해 말까지 일자리예산으로 54조원을 쏟아 붓고도 고용률은 지난 1년 내내 감소했고 경제의 허리라는 30, 40대마저 고용참사를 피해가지 못했다. 여기에 성장률까지 마이너스로 돌아서자 아무리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외쳤던 대통령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문 대통령이 친기업 지도자라는 증언도 적지 않다. “창조경제 현장을 찾아 다니며 경제활력을 강조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실은 기업인에게 곁을 주지 않았던 반면 친기업과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문 대통령이 도리어 재계와 소통에 적극적이다”는 게 최근 만난 재계 인사의 평이다.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와 바이오, 미래형자동차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선포한 마당이라 대통령이 그 주력 산업의 현장을 찾아 지원을 약속하는 게 이상할 건 없다. 문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의 손 한번 잡았다고 재벌정책이나 경제민주화 드라이브의 방향을 선회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만남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타이밍, 시점이 특히 그렇다. 국민 모두가 경제를 걱정하는 마당에 대통령이 기업인을 만나 경제활력을 기대하며 지원을 약속하는 것이야 하등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경영권 승계 청탁을 위한 뇌물공여와 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대법원에 올라간 이 부회장 사건은 뇌물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과 함께 전원합의체에서 심리 중인데 문제는 두 사건이 경합관계라는 점이다. 13명의 대법관들이 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판단을 유지하면 경영권 승계 목적의 뇌물 정황이 커져 이 전 부회장이 다시 구속될 수 있으며, 이 전 부회장의 항소심 판단에 손을 들어주면 뇌물규모가 축소돼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이 줄 수도 있다. 재벌 면죄부 아니면 국정농단 봐주기의 하나로 결론 날 수밖에 없는 재판이라 어떤 결정에도 파장이 만만찮다. 더구나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가 경영권 승계를 판단하지 않고 뇌물액수를 크게 줄여 ‘재벌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던 만큼 대법관들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민감한 재판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났으니 말이 안 나올 리 없다. 장차 대법원에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기라도 한다면 대통령의 행보에 대법관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말까지 나오지 않겠는가. 검찰이 삼성 경영권 승계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삼성바이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문 대통령이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맨 게 아닌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정부 들어 진보 색채를 분명히 한 김명수 사법부다. 대법원이 재벌과 적폐세력 누구 손을 들어줄지 더욱 궁금해진다.

사회부장 김정곤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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