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권고ㆍAMRO 보고서 인용… 한은은 “고려 안해” 선 긋기
“국제통화기금(IMF) 조사단과 아세안(ASEAN)+3(한중일)의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도 한국은 통화정책을 완화적 기조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2일 피지 현지 기자간담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은행에 우회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재부는 “원론적 발언”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시장에선 1분기(1~3월)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한 재정당국이 한은도 금리 인하로 ‘경기 살리기’에 동참하라는 속내를 내비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더구나 수출은 지난달에도 역성장하고 정부 추경안은 국회 파행에 발목 잡힌 상황이라 금리를 내리라는 정부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은에 부양동참 요구 시동?
3일 전문가들은 전날 홍 부총리 발언에 대해 국제기구 보고서를 인용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경기 침체 국면에 사실상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중을 내비쳤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IMF는 지난 3월 한국을 찾은 연례협의단이 9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 제안과 함께 “한은은 명확히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가져야 한다”며 사실상 금리 인하를 권고했다. AMRO는 보고서 ‘2019 아세안+3 지역경제전망’에서 한국의 통화정책을 일본, 태국과 더불어 ‘완화적’이라고 규정하며 ‘현재의 완화기조를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IMF와 달리 현행 통화정책 기조가 적정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홍 부총리는 AMRO 또한 보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권고했다는 의미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 살리기용 추경 규모가 작으니, 금리도 같이 인하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지낸 강명헌 단국대 교수는 “(압력까진 아니지만) 금리 인하를 원하는 기재부의 의중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홍 부총리가 ‘(통화정책을) 말하기 적절치 않다’고 단서를 달고 한 말이라 강한 압박으로 볼 순 없지만 의중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해석이란 반론도 있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기준금리(1.75%) 수준은 분명 완화적이며, AMRO 보고서의 ‘현재 완화기조를 유지하라’ 문구는 지금 금리수준을 유지하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보고서 문구를 금리 인하 권고로 단정할 수 없고 홍 부총리도 그러한 수준으로 인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2분기 성장률이 분수령 될 듯
한은은 금리 인하에 선을 긋고 있다. 아세안+3 회의 참석차 홍 부총리와 동반 출장 중인 이주열 한은 총재는 1일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추경 예산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올해 정부 예산은 총지출 증가율이 9.5%로 확장적 수준이며, 이럴 때는 정부는 기존 예산이 계획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히려 재정당국의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한은 안팎에서는 “홍 부총리가 한은 입지만 좁혔다”는 불만도 나온다. 재정당국이 금리 인하 분위기를 조성할 경우 한은이 “정부에 굴복했다”는 비판을 의식해 금리 인하에 더욱 소극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은 일단 홍 부총리 발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07%포인트 오른 1.739%로 마감했다. 한 증권사의 채권딜러는 “오전 중 채권시장이 잠깐 강세를 보이긴 했지만 큰 변동은 없다”고 전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달 금통위가 열리지만 추경 예산이 집행되지 않아 금리를 내릴 근거가 빈약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경기지표가 지속적으로 악화하거나 미중 무역협상, 브렉시트 등 대외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정부가 그간의 ‘중앙은행 독립성 존중’ 원칙을 접고 본격적인 금리 인하 압박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2분기 GDP 속보치가 나오는 7월 말 이후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다만 △1분기 마이너스 성장에 따른 기저효과 △재정집행 등으로 2분기 성장률이 양호한 수준으로 반등한다면 금리 인하 요구가 약화될 수 있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금리를 내리는 것도 부담이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한은이 올해 말이나 내년쯤 악화한 경제지표를 확인하고 ‘등 떠밀리듯’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며 “한은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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