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은씨는 “자신에게 잘 맞는 러닝화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부상을 줄이고 기록을 단축시킬 수 있다. 두 켤레 이상 마련해 번갈아 신으면 바닥 쿠션이 복원되는 기간이 길어 오래 신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연예인도 아닌데 먹고 입고 뛰는 일상이 화제가 된 사람이 있다. ‘러닝계의 셀럽(유명인 Celebrity의 줄임말)’ 안정은(27)씨다. 안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구독자(팔로어)는 약 45만명, 그의 유튜브 러닝 영상은 조회수 24만뷰를 돌파했다. 러닝 크루(running crew·소셜미디어를 통해 팀을 결성해 함께 뛰는 문화) 붐이 막 시작된 2016년 달리기를 시작해 각종 마라톤 대회의 완주 메달만 100여개를 땄고, 지난해 10월엔 아예 달리기 관련 이벤트를 기획하는 1인 회사 ‘런더풀’을 차렸다.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안씨는 이렇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러닝전도사 안정은입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7회, 울트라 트레일 러닝 111km 완주, 철인3종경기 완주. 2년여의 짧은 기간에 안씨가 쌓은 이력이다. ‘좋아하는 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달리기에 관한 칼럼을 썼고, SNS에 사진을 올렸고, 동영상을 제작하다 얼마 전 책도 썼다. 에세이 ‘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쌤앤파커스 발행)는 출간 한달 만에 3쇄를 찍었다. 스스로 “웬만한 남자보다 좋다”고 자신하는 강철 체력에 대학시절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다진 환한 미소, 똑 부러지는 발성 덕에 광고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왜 나만 안 풀리나’ 창피했던 그 때 

안씨가 달리기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건 스스로를 ‘인생의 실패자’라고 자책할 만큼 꿈도 끈기도 사라진 때였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던 그는 회사가 합병되면서 6개월 만에 그만뒀다. 꿈에 그린 승무원에 도전해 중국 항공사에 합격했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여파로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아 백수로 지냈다. 합격자 200명의 취업비자가 몇 달에 걸쳐 발급됐지만 딱 1명, 안씨의 비자만 1년 간 발급되지 않았다. ‘취업 사기 당한 것 아니냐’는 주변의 비아냥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풀코스 마라톤에서 소모되는 열량은 대략 3,000~4,000kcal정도다. 안정은씨는 "20km 구간 이후 2,3번에 걸쳐 에너지바, 에너지젤 등을 먹으며 뛴다. 음식을 손에 쥐고 뛸지 다리나 허리에 차고 뛸지 미리 연습해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매일 아침 눈물로 베개를 적시다가 부끄럽고 창피해서 하루는 무작정 집 밖을 달렸어요. 이상하게 기분이 상쾌하고 걱정이 사라지는 거예요.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달리게 됐어요.” 마라토너들이 극한의 구간을 지날 때, 두뇌에서 마약 성분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겪은 셈이다. 안씨는 달리기와 함께 인생의 변곡점(터닝포인트)을 경험한 그 순간을 ‘러닝포인트’라고 이름 붙였다. 인터넷을 뒤져 한 러닝크루 동호회에 가입했다. 동호회 회원들과 남산 일대를 함께 달리고 각종 마라톤 정보를 교환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고, 새 직장을 구했다.

 ◇풀코스 마라톤 완주, 무모한 도전서 얻은 것 

이 와중에 문득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진짜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면 못 해낼 일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마라톤(현 JTBC 서울 마라톤)에 참가신청서를 냈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3개월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안씨는 “주변에서 말렸지만, 한번 한다면 해야 되는 성격이라 밀고 갔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의 3개월이 지나고 나간 대회에서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자신만큼 느린 속도로 달리는 아마추어 참가자들이었다. “제 옆에 시각장애인이 달리는 거예요. 동반주자가 끈을 묶어 길을 안내하죠. 양 팔 없는데도 달리는 분, 심지어 휠체어 밀며 참가하는 분도 있었어요.” 4시간 38분 만에 들어선 결승선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몇 달 간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몸이 상했지만, 다시 마라톤에 도전했다. 그는 “완주 자체에 감사했다. 마라톤은 끝까지 달리면 누구나 메달을 받는다. 때로 꼴찌가 1등보다 더 큰 박수를 받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마라톤은 자존감을 만드는데 더 없이 좋은 운동이지만, 안씨처럼 요령없이 출전하면 위험하다. 안씨는 “100일 전부터 준비하면 42.195㎞를 완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3,4일 정도 20~30분간 땀이 날 정도로 걷다가 몸이 가벼워지면 달리는 연습부터 시작해 강도와 거리를 늘려야 한다. 4~6주차에 본격적으로 기초체력을 다진다. 충분한 스트레칭 후 걷기 10~20분, 달리기 30~60분, 계단오르기를 섞어 1시간가량 유산소운동을 한다. 이후 운동시간을 꾸준히 늘려 6주차에는 90분 이상 뛴다. 7주차 17km를 시작으로 본격 장거리 달리기를 연습해 각 주마다 3km씩을 더 늘려 뛰며 자신감을 붙인다. 뛰는 속도가 비슷한 러닝 메이트가 있으면 더 효과적이다.

안정은씨는 "마라톤을 하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잡지사에 달리기 관련 칼럼을 투고해 칼럼니스트가 됐고, 퇴사 후 글쓰기 관련 책 수십권을 읽고 책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해 20여군데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지난달 출간된 책을 그렇게 나왔다. 홍윤기 인턴기자
 ◇달리면 내일을 달릴 힘이 생긴다 

운동 후 가장 달라진 건 무슨 일에서든 자신감이 붙었다는 점이다. 안씨는 “승부욕이 강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곤 했는데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됐다”고 말했다. 뛸 수 있는 곳이면 제주도든 아프리카든 가리지 않고 향했고, 산길도 잘 달리고 싶어 근육운동을 시작했다. 꾸준히 SNS에 달리는 사진을 올리며 개인 기록을 향상시켰는데, 이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각종 달리기 관련 행사에 초대됐다. 마라톤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소셜미디어가 각광받으면서 강연·광고문의도 쇄도했다. 뉴발란스, 아식스 등 스포츠 브랜드를 비롯해 지프, 폭스바겐, 현대차 아이오닉, 아모레퍼시픽 등 자동차와 화장품 업계의 모델로도 발탁됐다.

달리기로 인생이 바뀌었지만, 뛰고 싶지 않은 슬럼프가 찾아 올 때도 있다. 안정은씨는 “일주일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으면 마라톤대회에서 뛰는 사람들을 구경했고 그때마다 다시 달리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달리기가 어떤 고민에 해답을 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잡념을 지워주고 시련을 이겨낼 용기를 줘요. 내일을 달릴 힘이 생기는 거죠.” 국내 마라톤대회는 약 400여개, 5월에 절정을 이룬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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