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ㆍ나경원 등 “누굴 위한 선거법 개정이냐” 대전ㆍ대구ㆍ부산 돌며 규탄
“국민들은 지금 ‘먹고 사는 게 문제다’, ‘죽겠다’고 하는데, 선거법 개정을 얘기하는 것도 부끄러워해야 할 이들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불법적으로 태웠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여러분! 누굴 위한 겁니까!”
2일 오후 3시 30분쯤, 뙤약볕이 내리쬐는 동대구역 앞. 오전 서울에서 시작해 대전을 찍고 ‘보수의 심장’ 대구에 도착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외침이 역전 광장을 때렸다. 황 대표는 “수사기관은 지금도 많은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제정법까지 패스트트랙에 태웠다”며 “이제 경제실패, 민생파탄, 안보실정에 대한 심판이 두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공수처를 통해) 국민들 눈과 입을 막으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태극기와 ‘독재타도, 헌법수호’ 등이 적힌 피켓을 든 당원 및 지지자들은 “옳소”, “황교안”을 큰 소리로 연호했다. 전날 대구시당이 갑작스레 집회 일정을 공지했음에도, 이날 동대구역 앞에 운집한 인원은 당 추산 5,000명이 넘었다.
대구 지지자들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원내투쟁을 벌인 나경원 원내대표에게도 열렬히 호응했다. 나 원내대표는 “국민세금 털어가는 포퓰리즘 정권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그냥 있어서 되겠나”라며 “더불어민주당 2중대, 3중대를 만드는 선거제 개편안을 막으려는 건 우리 밥그릇이 아니라 국민 밥그릇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한국당 지도부는 청와대 앞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여는 것으로 장외 일정을 시작했다. 이후 이들은 서울역과 대전역, 동대구역을 거쳐 부산까지 ‘경부선’을 타고 패스트트랙의 문제점을 설파하는 대장정에 나섰다. 역 앞에서 정부ㆍ여당 규탄집회를 한 뒤 거리로 나서는 행군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지지는 종착점인 부산에서 정점에 달했다. 특히 부산의 경우 역 앞이 아니라 일반 시민의 비중이 높은 서면 일대를 택했다. 퇴근 시간이 겹치면서 가장 많은 약 1만 명(당 추산)이 황 대표 등을 에워싸고 반겼다. 황 대표가 “이 정부가 나를 탄압하고 있지만 두렵지 않다. 몸이 부서지고 죽음에 이른다 할지라도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의 선봉에 서겠다”고 외치자, 시민들은 “황교안”을 거듭 외쳤다. 당 안팎에선 “국정농단 이전의 지지를 되찾은 듯한 분위기였다”는 평이 나왔다.
한국당이 이날 전국적 장외집회의 출발지로 영남을 택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텃밭인 만큼 투쟁 동력을 확실히 얻을 수 있는 데다,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에 태운 선거제도 개편안이 통과될 땐 수도권과 더불어 직격탄을 입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치개혁특위 소속 김재원 한국당 의원 등에 따르면, 선거구 인구 하한 기준선(15만3,405명)에 미달하는 26개 지역 중에는 수도권이 10곳으로 가장 많고 영남이 8곳으로 뒤를 잇는다.
이날 지도부가 전국 순회에 나선 시각, 일부 의원들은 국회에서 집단 삭발투쟁에 나섰다. 이장우ㆍ김태흠ㆍ윤영석ㆍ성일종 의원과 이창수 충남 천안병 당협위원장은 국회 본관 앞에서 “선거법 날치기 원천무효”를 외치며 집단 삭발식을 가졌다. 이들은 국민의례를 마친 뒤 외투와 넥타이를 벗고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의자에 앉은 채 삭발을 시작했고, 행사에 참여한 당원들은 큰소리로 애국가를 제창했다. 정치인의 집단 삭발은 2013년 11월, 김선동ㆍ김재연 등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정부의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에 반발해 실시한 이후 5년여 만이다.
황 대표 등 지도부는 3일엔 ‘호남선’을 타고 상경하며 거점 별 규탄집회를 열 예정이다. 다음 주부터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약 400㎞를 걸으며 국민과 만나는 ‘국토 대장정’을 계획하고 있다. 황 대표는 이 같은 전국 순회 행보와 삭발 등을 두고 여권에서 “총선용 지지층 결집행위”란 비판이 나오는 데 대해 “간절함의 표현”이라며 “본인들이 하지 못한 것을 한다고 남을 폄훼하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대구=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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