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 재산 매각에 정부 개입 부적절… 북한, 미국 비핵화론 일부 수용 필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악화일로인 한일관계와 관련해 당분간 별 대응 없이 상황 관리에만 주력한다는 방침임을 시사했다. 남측에 ‘우리 편’이 되라고 요구 중인 북한을 향해서는 미국의 비핵화 방법론을 일정 부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강 장관은 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내신 브리핑에서 전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이미 압류한 일본 전범 기업의 한국 내 재산을 매각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한 일과 관련, “국민의 권리 행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개입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최종 절차인 현금화에 피해자들이 착수한 만큼 대안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시기 조절도 필요하다”며 “지금은 대외적으로 정부가 뭘 발표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아직 타협할 단계는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은 “징용 피해자가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 판단 존중 차원을 넘어 역사와 인권 문제 하에서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치유가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당장 외교당국이 할 일은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이다. 강 장관은 “관계 부처들이 참여하는 차관급 정부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사법 절차 진행 동향과 논의 내용 등을 꾸준히 파악 중”이라며 “과잉 대응으로 상황이 악화하지 않도록 양국 외교당국 간에 끊임없이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달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관계 개선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는 게 정부 인식이다. 강 장관은 “G20 다자 정상 계기 우리의 참여 여부를 검토 중”이라며 “모멘텀(동력)이 마련될 수 있도록 G20 회의 계기, 또 그 밖의 계기에 대해 (일본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2ㆍ28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사실상 중단된 북미 간 비핵화ㆍ보상 협상이 재개되려면 북한의 태도 전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도 강 장관은 이날 재확인했다. 미국 편을 든 셈이다. 그는 “포괄적인 접근법을 갖고 있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포괄적 대화를 원하고 있다”며 “북한은 스코프(범위)를 좀 더 넓혀 포괄적인 안목을 갖고 이 사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은 연일 선전 매체를 동원해 자기 편에 서라고 남측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미 대화 촉진자’로서 정부의 입지가 좁아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강 장관은 “대외적으로 발신되는 (북미의) 메시지를 보면 상당히 서로 압박 전술을 쓰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북한으로서는”이라며 “그럴수록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진다”고 했다.
강 장관은 “‘빅 이너프 딜’(충분히 큰 합의)이라고 해야 할지 ‘굿 딜’(좋은 합의)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원하는 건 굿 딜”이라며 “북미 간에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굿 딜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도 했다. 이에 북한의 단계적 접근법을 연상시키는 종전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합의)을 정부가 미국의 구미에 맞는 표현으로 대체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일각에서는 나왔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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