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선술집은 살아 있다

입력
2019.05.03 04:40
31면
0 0

나이 때문에 못 들어가는 술집이 있다. 내가 클럽에 갔다고 치자. ‘시큐리티’라는 분들이 웃을 것이다. 서울 중심가 종로3가에도 나이 따지는 술집들이 있다. 송해 선생 이름을 붙여서 송해길, 파고다공원길, (구)허리우드극장길, 순라길에 그냥 종3이라고도 부르는 이 별난 골목은 노인들의 해방구다. 이발 5,000원에 염색 5,000원 안팎이 보통 가격이다. 수도권에서 이발하러 노인들이 많이 온다. 전철값은 공짜이고, 동네에 미장원은 있어도 이발소가 남아 있지 않으니까. 이 동네에서 제일 잘되는 업종이 그래서 이발소다. 음식값 싸기로 유명한 동네여서 뭐든 싸다. 삼겹살 3인분에 1만원이고 닭 세 마리에 역시 1만원이다. 생맥주 2,000원대에 소주 한 병 3,000원짜리도 있다. 특히나 명물 술집이 있다. 선술집이다. 왕년에 종로, 을지로에 흔했다는 진짜 선술집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꽤 있었다고 한다. 선술집은 ‘서서 마셔야’ 선술집이다. 보통 실비집, 대폿집, 선술집을 같은 성격으로 본다. 그중 선술집은 이제 전국에 손꼽을 만큼 적다. 실비집은 ‘實費만 받는다’해서, 대폿집은 대포라고 부르는 큰 잔에 따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선술집은 이 성격을 모두 포괄한다. 전형적인 노동 술집이다. 서서 마시고 훌쩍 가자면 일하는 사람들이기 마련이었다. 서서 마시면 허리가 아프고, 오래 있을 수 없다. 이른바 ‘회전’이 쉽다. 가격을 싸게 유지할 수 있다. 주머니 가벼운 노인들이 좋아한다. 선술집은 종3 일대에서도 순라길과 옛 파고다극장 앞에 있다. 순라길의 명소는 도레미잔술집이다. 문을 열었더니 주인아저씨가 고개를 젓는다. 나가라는 얘기다. 취재차 왔으니 나는 버틸 수밖에. 그러자 주인아저씨가 외친다.

“괜찮겠어요?”

내게는 약간의 경고(?)요, 이미 들어 차 있는 손님에게는 양해를 구하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은 복지카드, 무료 전철카드 있는 분들이 최저 연배다. 하나밖에 없는 공동 탁자에 서서 같이 마셔야 한다. 그러니, 웬 젊은이(?)나 여자들이 들어오면 양해를 구하는 게 불문율이다. 잔술은 소주 막걸리가 종이컵에 따라서 단돈 1,000원. 식탁에는 예닐곱 가지 공짜 안주가 놓여 있다. 유료 메뉴도 있다. 어묵꼬치 하나에 2,000원이다. 공동 안주가 싫으면 이걸 시키면 된다. 손님들은 아끼고 아껴서 두어 잔쯤 마시고 나가는 게 보통이다. 서로 모르는 손님들끼리 말을 트고 잔술을 나눈다. 그러다가 주인아저씨가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우리 집은 정치 얘기 금지잖아요!”

달리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싸우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님들이 정치 얘기를 안할 리가 없다. 그 틈에 풍류객들이 든다.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하며, 그저 늘 이 동네를 돌며 술 한 잔을 얻어 마시고자 하는 양반들도 온다. 그렇게 도레미, 흥겨운 리듬의 하루가 저문다.

구 파고다극장 앞에 있는 선술집 타운으로 옮긴다. 타운이라고 해봤자, 예닐곱 대의 포장마차다. 각기 개성 있는 메뉴를 판다. 낮에 열어서 해 지고나면 닫는다. 보통 포장마차와 영업시간이 다르다. 대개 낮에 나오는 노인들이 주고객이기 때문이다. 요새 제일 잘 나가는 건 포장마차 안주답지 않게 삼겹살구이다. 수입 삼겹살이 싸져서 생겨난 풍요다. ‘분이네’라는 집에 들른다. 해산물이 정갈하다. 해삼 멍게에 주꾸미도 있다. 그날그날 장을 봐서 나온다. 돼지고기를 넣고 한 솥 가득 김치찌개도 끓인다. 뭘 시키든 1만원을 넘는 건 드물다. 특이한 건 이 ‘타운’의 포장마차들은 과일 안주를 판다. 건강 생각하는 세대의 풍속인 걸까. 아직 서울 바닥에 남아 있는 선술집이라니. 하얀 바지에 백구두를 갖춰 멋지게 입은 노인이 들어서서 막걸리를 시킨다. 아, 왕년이여.

박찬일 요리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