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은 등산로에서 두세 명이 나란히 걸으며 길을 막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편도 1차선 도로에서 심한 저속으로 뒤차들의 길을 막으며 중앙선 침범을 유발하는 차도 있다. 지하철에서 큰 가방을 메고 출입구에 서서 길을 막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길을 막다’, ‘길을 막음’을 줄여 누리꾼들은 ‘길막’이라고 표현한다. 두 어절의 구를 줄여 한 낱말로 만들었다.
‘길막’이란 말은 본래 온라인 게임에서 다른 사람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길을 막는 행위를 뜻하던 표현이다. 이제는 일상어에서 길, 계단, 문 앞 등에서 차나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는 일을 가리키는 쓰임으로 확대되었다. 명사 ‘길막’은 ‘계단 길막’, ‘골목길 길막’, ‘지하철 길막’, ‘소방차 길막’처럼 다른 말의 꾸밈을 받기도 하고, ‘길막 차량’, ‘길막 주차’, 길막 냥이’, ‘길막 레전드’와 같이 다른 말을 꾸미면서 쓰인다.
또 ‘길막’은 접미사 ‘-하다’, ‘-당하다’의 어근이 되어 동사 ‘길막하다’, ‘길막당하다’ 형식으로 잘 쓰인다. “여성들로 길막하고 치우려면 성추행이라 함”, “소방차 길막한 운전자에 벌금 못 때린 황당한 이유”, “고양이에게 길막당하지만 행복한 상황” 등이 그 보기다.
그런데 사전에는 이미 ‘길막’과 같은 뜻의 명사 ‘차로(遮路)’, ‘차도(遮道)’가 있고, ‘길막하다’ 뜻의 동사 ‘차로하다’, ‘차도하다’가 올라 있다. 사전에 ‘길을 막음’ 뜻의 낱말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런 표현을 써야 할 비상식적 행동이 많았음을 가리킨다. 누리꾼들이 새로 만든 ‘길막’과 ‘길막하다’는 어려워서 안 쓰는 ‘차로’, ‘차로하다’ 등의 공백을 메워 준 것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고발하는 사회적 기능이 있는 말로 평가된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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