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하늘의 별이다. 반에 친구는 많지만 그 중 내 친구는 없다. 사실 밤하늘의 별은 우리가보고 있는 것보다 무수히 많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별이다.”
25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초 4학년 3반 교실. ‘어린이 작가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제목의 수업에 참석한 4~6학년생 20명이 자신이 앞으로 쓸 이야기의 주인공을 차례로 소개했다. 상상 속에서 아이들은 동생에게 벌컥 화를 내는 ‘번개’가 되기도 하고, 터뜨리고 싶다는 욕망이 부글거리는 ‘지뢰’로 변신하기도 했다. 예빈 작가님, 해슬 작가님, 채현 작가님… 교실에서 아이들은 ‘작가님’으로 불렸다. 미래의 한강, 미래의 최은영이 만들어지는 현장이었다.
수업을 이끈 것은 이현아 선생님이다. 5년째 같은 수업을 맡고 있다. 그간 수업에서 아이들이 창작한 이야기가 200여개 쌓였다. 교실에는 그 이야기들을 엮은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책 고유의 출판등록번호인 ISBN코드까지 갖춘 ‘진짜’ 책들이다. 책을 펴낸 출판사는 이 선생님이 차린 1인 출판사. 아이들이 ‘진짜 저자’가 되는 기분을 맛볼 수 있게 할 방법을 찾다가 낸 아이디어다. “아이들의 세계를 근사한 틀에 담아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물성을 가진 책으로 인정해주고 싶었죠.”
순수한 동심부터 왕따를 당한 경험, 사춘기의 당황스러움, 마음 속 어둠까지, 책을 만들며 만난 아이들의 세계는 이 선생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풀어 낼 기회가 절실했다는 걸 느꼈어요. 이야기는 아이들 안에 다 있어요. 글 쓸 기회 딱 한 방울만 떨어뜨려주면 이야기가 쏟아져 내려요. 글쓰기 능력은 덤으로 얻게 되고요. 마음껏 쓰게 한다지만 완결된 이야기를 써내려면 개요와 주제, 문단 나누기 등 글쓰기의 기본기를 갖춰야 하거든요. 논술 실력으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수업을 통해 창작의 즐거움에 눈뜬 아이들은 작가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초등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면 창작의 통로가 막혀버린다. 중학교 이후부터는 대입 수능을 꼭지점으로 모든 활동이 평가와 성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정규 과목이 아닌 글쓰기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올해 초 창간된 창작과 문학교육 계간지 ‘쓰고 쓰게’는 단절된 창작 교육에 대한 위기 의식을 공유하는 선생님들이 만든 문예지다. 서울시교육청의 ‘책마을 창작학교’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모임의 결과물이다. 서울의 학교 120곳을 조사한 결과 문예반이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운영위원장을 맡은 최승애 진관고 교장은 “입시를 위한 독서, 논술을 위한 글쓰기가 아닌 진솔한 마음을 담아내는 통로로서의 글쓰기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글을 실을 수 있는 장, 즉 지면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잡지를 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쓰고 쓰게’는 올해 가을호부터 전국의 학생들에게 투고를 받아 시, 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실을 계획이다.
부산 만덕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조향미 시인은 매주 3시간씩인 문학수업 중 한 시간을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으로 운영한다. 장편 소설 읽고 8,000자짜리 서평 쓰기, 시 에세이와 시집 비평문 쓰기, 단편소설 쓰기 등을 과제로 낸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A4 용지 한 장 채우기도 버거워 하지만, 상당수가 단편 소설을 써 낸다고 한다. 학생들이 쓴 작품과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의 문학수업’ ‘작전명 진돗개’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아이들이 입시만을 위한 독서나 글쓰기가 아닌 인생의 스승이자 벗으로 책을 만났으면 했어요. 자기 표현의 수단이면서 미적 완성도를 갖춘 글쓰기를 체험하는 기회도 주고 싶었고요. ‘문학적 글쓰기’는 교실에서부터 보존돼야 해요. 잘 되면 작가 탄생의 출발이 될 테고, 잘 안 돼도 학생들에게 문학의 즐거움이 남겠죠.” 조 시인이 요약한 ‘창작 교육의 힘’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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