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만, 우습지 않다. 착하지만, 무르지 않다. 친근하지만, 만만하지 않다. 배우 이광수(34)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연기도, 그가 연기한 캐릭터도, 늘 그랬다.
첫 주연작인 영화 ‘돌연변이’(2015)에서 이광수는 신약 개발 부작용으로 ‘생선 인간’이 된 청년의 우화를 그려내며 N포 세대의 좌절을 대변했다. tvN ‘안투라지’(2016)에선 ‘허세’와 ‘자뻑’으로 사는 전직 아이돌이었고, KBS ‘마음의 소리’(2017)에선 지질한 만화가 지망생이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으로 굳어갈 즈음, tvN ‘라이브’(2018)에서 신입 경찰 역을 맡아 빼어난 정극 연기를 선보였다. 웃음 뒤에 애잔함을 남기는 연기였고, 가볍게 시작해 묵직하게 끝맺는 캐릭터들이었다.
1일 개봉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이광수는 자신의 진가를 또 한번 증명한다. 웃기고 울리다가 뜻밖의 감동까지 와락 안긴다. “예전에 성동일 선배님도 칭찬을 많이 해 주셨어요. 재미있는 장면도 제가 연기하면 마냥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페이소스가 느껴진다고요. 팬들 중에는 제가 측은해서 좋다고 하시는 분도 많아요.”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이광수가 “요즘 주변의 격려 덕분에 자존감이 높아졌다”면서 수줍게 들려준 얘기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보육시설에서 만나 형제가 된 지체장애인 세하(신하균)와 지적장애인 동구(이광수)의 이야기다. 세하는 어린 아이 지능을 가진 동구를 위해 생각과 판단을 대신해 주고, 동구는 목 아래로 움직일 수 없는 세하에게 손과 발이 돼 주며 20년간 한 몸처럼 살아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보육시설에 지원금이 끊기면서 두 사람은 헤어질 위기에 놓이고, 세하는 동구와 자립하기 위해 동구를 수영대회에 출전시킨다. 지체장애인 최승규씨와 지적장애인 박종렬씨의 실화에서 출발한 영화다.
이광수는 육상효 감독에게 동구 역을 제안 받고 오래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저 때문에 장애가 희화화될까 봐 걱정됐어요. 제가 다른 배우들보다 코믹한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영화를 볼 장애인 분들과 그 가족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어요.”
이광수의 마음을 붙잡은 건 시나리오에 담긴 태도와 시선이었다. 영화는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도, 인간 승리의 드라마로 다루지도 않는다. 비장애인 대하듯 평범하게 형제의 일상을 그려낸다. 그래서 장애로 인해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극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장애 때문에 겪는 시련도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평범해서 특별한 영화다. 이광수는 “과장이나 희화화 없이 함께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담백하게 전달하는 시나리오였다”며 “당연하게만 여겼던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도 새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광수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동구의 깊은 속내도 들여다봤다. 그 마음을 동작과 표정의 미묘한 뉘앙스로 전달한다. 촬영 초기엔 표현을 더하거나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중반부 이후에는 그냥 동구였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이광수 재발견’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동구의 순수함만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신하균과는 세하ㆍ동구 못지않은 우애를 자랑한다. 동구의 수영코치 미현을 연기한 이솜까지 세 사람은 내내 딱 붙어 지냈다. 말수 적고 낯 가리는 성격도 서로 닮았다. 인터뷰 도중 신하균은 이광수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광수 주변엔 그를 아끼는 선배가 많다. 성동일은 SBS ‘괜찮아 사랑이야’(2014)부터 tvN ‘디어 마이 프렌즈’(2016)와 ‘라이브’, KBS ‘화랑’(2017), 영화 ‘탐정: 리턴즈’(2018)까지 이광수를 챙겼고, 정진영은 MBC ‘동이’(2010)에서 만난 이광수를 영화 ‘평양성’(2011)에 추천했다. 조인성, 송중기, 임주환도 든든한 벗이다. “제가 형들을 좋아해서요. 형들과 있을 때 가장 편해요.”
9년째 몸담고 있는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도 빠질 수 없다. 이광수가 배우로, 예능인으로 성장해 온 과정이 ‘런닝맨’에 차곡차곡 담겼다. 이광수는 “과거 방송을 다시 보면 당시 소품은 무엇이었고 동료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다 기억난다”고 했다. 한때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연기로 이미지를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억지로 타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는 “‘런닝맨’으로 웃음을 드리고, 영화와 드라마로는 감동을 드릴 수 있으니 둘 모두 감사한 일”이라고도 했다.
‘런닝맨’이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광수는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의 특별한 형제’는 10일 베트남에서도 개봉한다. 인기에 취할 법도 하지만, 그는 또 다른 별명 ‘기린’처럼 친근한 배우로 남기를 바란다. “간혹 팬들이 꿈이 뭐냐고 물어요. 저는 지금 되게 행복하거든요. 이 행복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알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다른 분께 행복도 드릴 수 있으니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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