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박탈감이 느껴지죠.”
노동절인 1일. 화창한 봄 날씨 속에 누군가는 가족들 손 잡고 나들이를 간다지만 대리운전기사 박모(60)씨에게는 다른 나라 얘기나 다름없다. 박씨가 부산에서 대리운전을 한지 올해로 9년. 중학생이던 막내아들이 대학에 졸업할 때까지 새벽같이 운전대를 잡고 취객을 상대해온 박씨에게 ‘노동절’은 말 그대로 ‘노동하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노동절에 쉬거나, 휴일수당을 챙겨 받는다. 하지만 박씨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휴식도, 휴일 수당도 꿈꾸지 못한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특정 업체에 소속돼 일하지만 근로계약이 아니라 용역, 도급, 위탁, 운송 계약을 맺은 이들을 말한다. 5월 1일은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이라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혜택에서 제외된다.
물론 5월 1일을 쟁취해낸 이들도 있다. 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어 ‘개인사업자’ 취급을 받았던 학습지 교사들이 대표적이다. 1999년 노조를 만들었고, 이듬해에는 재능교육 등 사용자측과 단체협약까지 체결했다. 그 덕에 학습지 업체 정규직 사원이 쉬는 날에 교사도 쉴 수 있게 됐다. 오수영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은 “이때 맺은 단체협약이 우리 업계에서 ‘기준’이 됐다”며 “이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항의해서 얻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문제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조를 ‘협상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업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현재 부산지역 대리운전 노동조합에 부산지역 기사의 5%에 해당하는 350여명이 가입돼있지만 대리운전 업체들과 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박씨는 “대리운전 기사는 언제든지 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생계비 200만원을 벌기 위해서 주6일은 기본이고 매일같이 출근하는 기사도 상당수”라며 “휴식 보장을 위해서라도 업체들이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의 사정은 비슷하다. 택배기사들이 운송계약을 맺은 것은 지역별 택배 대리점이지만, 대리점은 원청 택배업체가 요구하는 물량에 맞춰 일할 것을 택배기사에 요구한다. 충남 천안에서 10년째 한 대기업 택배기사로 일하는 김모(42)씨는 “5월 1일은 물론이고 선거일에도 쉴 수가 없다”며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고 하는데 언제 일하고 언제 쉬는지 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개인사업자인가”라고 되물었다. 이날도 배달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오전 6시30분에 출근한 김씨는 오전에만 100개 가까운 택배를 운송했다. 박성기 민주노총 화물연대 택배지부 지부장은 “택배업체 16곳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며 “택배업체 사측이 교섭에 응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에 따른 휴식은 당연한 권리지만 특수고용직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게 현행법의 기본 방침”이라며 “특수고용직 보호를 위한 별도의 특별법을 마련해 휴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별도의 특별법보다 차라리 노조 결성권 등 노동기본권을 인정해주는 게 좋다”며 “이를 위해 현 정부 공약이기도 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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