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꼭 자위대 명기”… 레이와 시대 맞아 전후체제 벗어날 호기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저물고 레이와(令和) 시대 막이 오르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일본 보수세력에게는 그들의 정치적 구상을 실현시킬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새 시대를 맞이해 변화를 갈망하는 사회 분위기가 ‘새로운 국가 만들기’라는 아베 총리의 기치 하에 보수ㆍ우경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8월 당 총재 3연임에 도전하면서 “다음 시대를 향해 새로운 국가 만들기의 선두에 서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1차 내각 출범 직전인 2006년에 쓴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책을, 2차 내각 직후인 2013년 ‘새로운 나라로’로 개정하면서 ‘강한 일본’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따라서 올 11월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에 등극하는 그에게 ‘새로운 국가’는 일종의 사명이다.
아베 총리에게 ‘새로운 국가’의 핵심은 전후 체제의 탈각을 통한 평화헌법 개정이다. 패전국의 그늘을 들어내고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4일 개헌을 추진하는 의원 모임에 메시지를 보내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해 위헌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헌법기념일인 3일 개헌과 관련한 언급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새 헌법의 적용시점을 2020년으로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선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전체의석(242석) 수의 3분의 2를 확보해야 한다.
이런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베 총리는 이달 25~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다음달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 이후 처음으로 국빈 방문하는 외국 정상으로 미일간 밀월을 강조할 수 있다. G20 회의 때엔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아베 총리의 움직임은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패권 경쟁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은 2009년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일본을 추월했고 동중국해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이러한 위협에 맞서 미일동맹을 통한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엔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대상에 우주ㆍ사이버 공간까지 포함시켰다. 중국의 대두뿐 아니라 북한 핵 위협도 방위력 강화의 명분이 되고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등장 이후 강화하고 있는 보호무역 성향은 그간 미국과 자유무역주의를 주도해 온 일본에 부담이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일본 국빈 방문에서 농산물 개방 등을 강하게 요구할 경우 어떤 방식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평화헌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나루히토 일왕과의 관계 설정도 변수다.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은 헌법 수호를 강조하고 전쟁 희생자에 대한 ‘위령 여행’을 통해 개헌을 추진하고 과거사 반성에 부정적인 아베 총리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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