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인천의 한 중소 배달대행업체에 취직한 오토바이 배달원(라이더) 김정호(가명ㆍ37)씨는 사장에게 매일 2,000원씩 한 달에 6만원가량의 산재 보험료를 떼줬다. 사장이 “배달일은 위험하니 산재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려 주문량이 유난히 많았던 지난달 20일, 오토바이가 도로에서 미끄러지면서 김씨는 허리를 다쳤다. 산재신청을 하려고 근로복지공단에 확인해보니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김씨는 “사장이 산재보험에 가입해 준다는 명목으로 돈만 가져갔고, 치료비와 오토바이 수리비를 내가 물어야 할 처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배달 서비스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라이더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근로 환경은 열악하다. 이에 노동절인 1일 라이더들의 권리 찾기를 위한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이 정식 출범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맥도날드에 소속돼있던 라이더 박정훈(34)씨가 지난해 7~8월‘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계기로 결성됐다.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어 답답함을 느낀 라이더들이 뜻을 모았고 8개월여의 준비 모임 끝에 이날 정식으로 닻을 올렸다.
근로시간에 사고가 나도 산재보험 혜택은커녕 고액의 수리비를 물어야 하는건 이들의 큰 고충이다. 라이더는 배달대행회사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맺고 있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사회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다. 그나마 라이더는 산재보험법(제125조)상 특례적용 대상인 특수고용직노동자 9개 직종(퀵서비스)에 해당돼 대행업체 사장과 본인이 보험료를 반반씩 부담하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업주가 꺼리거나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라이더들이 ‘적용 제외’를 신청할 수 있어 가입률이 낮다. 일반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 당연 가입되고 보험료는 100% 회사가 낸다.
노조가 없어 사측과 교섭이 불가능해 근무조건 악화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게 근본적 문제다. 본사 마음대로 배달료를 책정하고, 이를 깎아도 개인이 대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배달대행업체들이 책정한 배달료는 2,500원부터 3,700원까지 천차만별로 라이더가 최저시급(8,350원)을 벌기 위해서는 1시간에 3,4건의 배달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최근 일부 배달대행회사에서는 라이더에게 사전 공지 없이 배달료를 500원 삭감하거나, 배달료 할증의 기준이 되는 거리를 늘리고 있다. 라이더 이영준(가명ㆍ26)씨는 “회사에서 라이더의 근무시간까지 정해주면서 왜 배달료나 오토바이 리스비 등에 대해선 표준계약서를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70여명의 조합원이 모여 출범식을 열고 △플랫폼사(배달대행업체)의 산재ㆍ고용보험료 납부 △배달산업 표준계약서 도입 △안전배달료 도입 △노조 할 권리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출범선언문에서 “라이더의 노동은 곧 라이더의 생명”이라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배달(라이더의 생명)을 통해 편리함을 누리는 만큼 라이더도 안전하게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