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검사 돈봉투 사건’에 대한 법무부 징계 문제를 다루던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격려금 명목으로 돈봉투를 주고받는 검찰 내부 관행을 “천박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검찰 내부에선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금일봉을 받은 판사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사법농단 수사로 쌓인 법원과 검찰간 감정의 앙금이 묻어난다.
1일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 박형남) 심리로 열린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검사장) 사건이 시작이었다. 안 전 국장은 2017년 4월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 중앙지검 검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후배들에게 70만~100만원씩을 특수활동비로 건넨 사실이 밝혀져 면직 처리됐다. 면직은 해임에 이어 두 번째로 중한 징계다. 그는 면직까진 너무 과하다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면직 취소 청구소송 소송을 냈다. 1심은 안 전 국장 손을 들어줬다. “부적절하지만 관행인데 면직 처분까진 지나치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항소심에서도 안 전 국장 측은 “관행이라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박형남 부장판사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요새 검사들이 판사들을 기소한 것에 비춰 보면, 마치 재판이 끝난 이후 법원행정처 차장이 소속 법원장과 재판장을 만나서 밥 먹은 뒤 재판 잘했다며 격려금을 준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이어 “만약 판사들이 이렇게 했다면 검찰은 횡령이든 뭐라도 걸어 수사한다고 했을 것”이라며 “법원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수사하면서 자기들에 대해선 좋은 게 좋다라고 하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수사가 끝났다고 해서 두 보스(이영렬ㆍ안태근)가 만나서 아랫사람에게 서로 돈을 주는 건 너무 천박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안 전 국장 측에게 “그런 식으로 특활비를 준 게 얼마나 되는지 먼저 밝혀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박 부장판사의 이날 발언은 사법농단 수사를 한 검찰에게 제 눈의 들보는 외면한 채 법원만 나쁜 조직으로 매도했다는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 쪽에선 박 부장판사의 발언이 지나치다는 반발이 이어졌다.
사법농단 수사 당시 검찰은 공보관실비로 책정된 예산을 빼돌려 상고법원 홍보 목적의 ‘비자금’으로 쓴 사실을 확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해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돈 가운데 일부를 떼내 2015년 3월 전남 여수 엠블 호텔에서 열린 법원장 회의에서 법원장들에게 격려금으로 줬다. 박 부장판사는 전주지법원장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석했다. 수도권 검찰청의 한 간부는 “법무부ㆍ검찰의 돈봉투 만찬이 부적절했던 건 맞지만, 대법원장에게 금일봉을 받았던 당사자가 그게 문제라 지적하는 건 적절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2016년 대법관 후보로도 거론된 판사로 지난해 ‘재판으로 본 세계사’ 책을 낸 데 이어 지난달 ‘사법부, 믿어도 되나요?’를 주제로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 방송에선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현직 판사로서 죄송스러운 마음”이라 심경을 밝혔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