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성 진통제로 수백명 사망한 사건도 경찰 수사 시작
영국에서 1970∼1980년대 발생한 ‘수혈 감염 스캔들’에 대한 새로운 조사가 30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이전 조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에 따라 테리사 메이 총리가 2017년 지시했던 재조사가 2년 가까운 준비를 거쳐 시작된 것이다.
전직 판사 브라이언 랜스태프 경이 이끄는 이번 조사는 약 2년간 런던을 포함한 전국의 피해자로부터 증언을 들을 예정이다. 메이 총리가 증인 소환 권한을 부여한 만큼 전직 보건장관과 고위급 의료진 역시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조사 시작에 맞춰 메이 총리는 “수혈 감염 스캔들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이었다”면서 “이번 조사는 진실을 규명하고 관련된 모든 이들을 위한 정의를 가져오는데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공공 의료서비스인 국민보건서비스(NHS) 역사상 최악의 의료재앙으로 꼽히는 수혈 감염 스캔들로 약 2만5,000명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C형 간염에 걸렸고, 2,4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당시 피해자의 상당수는 혈우병 환자들이었다. 기적의 약으로 불리던 팩터Ⅷ으로 치료를 받았던 수천명의 혈우병 환자 대부분은 몇 년 후 HIV나 C형 간염, 혹은 둘 다에 걸렸다. 이 약은 미국의 수형자와 약물 중독자를 포함해 수천 명이 제공한 혈액의 혈장으로 제조됐는데 제공 혈액 중 하나라도 감염이 되면 모두가 감염되는 구조였다.
1990년대 마약성 진통제 처방으로 400명이 넘는 환자가 사망한 사실이 지난해 6월 드러나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영국 고스포트 전쟁기념병원 사건에 대한 경찰 조사도 본격 시작됐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켄트ㆍ에식스 경찰당국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영국 남부 햄프셔 지역에서 발생한 고스포트 전쟁기념 병원 사건의 범죄 수사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닉 다우닝 켄트ㆍ에식스 경찰 부서장은 “이번 사건은 매우 복잡하고 감정적인 사건”이라며 “수사 착수가 피해자 가족들에게 어느 정도 위안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서 고스포트 전쟁기념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령의 환자 가운데 갑작스러운 사망자가 계속 발생하면서 경찰이 여러 차례 조사에 나섰으나 지금까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유족들의 진상조사 요구로 2014년부터 독립 패널단이 조사에 착수해 지난해 6월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이 병원에서 1989∼2000년 456명의 환자가 부적절하게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를 투약받은 뒤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마약성 진통제는 다른 200여명의 사망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고 패널단은 밝혔다.
병원 측은 환자 상태 등에 대한 정밀한 의학적 진단 없이 무분별하게 마약성 진통제를 휴대용 의약품투입펌프를 통해 투입했고 이로 인해 고령의 환자 등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의 환자는 생명이 위독한 시한부 환자가 아니라 재활이나 일시적 간호를 위해 입원한 이들이었다. 당시 처방을 책임졌던 의사 제인 바턴은 2010년 이 병원에서 사망한 12명의 환자와 관련해 위법행위가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의사직을 그만두는 데 그쳤다. 또 병원 내 다른 누구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