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이 숙련자 업무 무방비로 떠안았다가… 스러지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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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이 숙련자 업무 무방비로 떠안았다가… 스러지는 청년들

입력
2019.05.28 04:40
수정
2019.05.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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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2>독성물질에 타들어간 젊음

전기도금업 새내기 김모씨, 안전장비 못 갖춘 채 작업 후 사망

숙련자와 동반작업 안 지켜져… 신참이 “못 하겠다” 할 수 있나

2016년 5월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사망한 김군의 3주기를 하루 앞둔 27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있다.연합뉴스

‘도금액(鍍金液) 교체’ 작업은 간단해 보였다. 작업장 도금조에 채워져 있던 투명한 액체를 바닥에 쏟아버리고 새로 물을 채운 후 하얀 가루를 물에 인스턴트 커피 타듯 부으면 되는 일이었다. 2018년 5월 28일 오전.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의 한 전기도금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김동규(가명ㆍ당시 23세)씨는 출근하자마자 처음 해보는 도금액 교체 작업을 지시받았다. 원래 다른 직원이 하던 일이었지만 그의 출근이 늦어지면서 동규씨에게 작업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김씨는 직원 7명의 작은 회사에 출근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입. 그간 건조작업, 도금 준비작업, 포장공정 이송 등을 주로 해 왔다. 도금액 교체를 처음 시도한 김씨는 이날 물 30ℓ에 사이안화나트륨 30g을 섞는 작업을 두 차례 했다. 그는 작업을 마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음료수를 한 잔 마신 뒤 다시 작업장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쓰러졌다. 작업 후 불과 5, 6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6월 18일, 약 3주간 뇌사상태에 빠져있던 김씨는 사망했다. 사인은 사이안화수소 중독으로 인한 호흡부전 및 화학성 폐렴악화였다.

사이안화나트륨은 물에 녹으면 사이안화수소라는 맹독성 기체가 발생하는 위험물질이다. 성인 남성 대상 사이안화수소의 치사량은 2g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사이안화나트륨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관리대상 유해물질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김씨는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던 거로 보인다. 사고 후 현장을 방문했던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김씨가 마스크를 썼는지도 확실치 않고, 고무장갑을 끼는 수준의 열악한 보호구만 갖추고 바가지에 사이안화나트륨을 퍼서 도금조에 타는 작업을 진행했다”며 “현장에서는 맹독성 기체를 환기할 수 있는 배기장치도 미흡해 보였다”고 말했다.

유해물질을 다루는 화학공정 작업인데도 안전교육과 안전장치가 미비한 산업현장. 그 곳에서도 숙련 노동자들은 오랜 경험으로 위험성을 인식하고 스스로 업무를 제어하며 산재를 피해 나가곤 한다. 하지만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들이 숙련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을 갑자기 떠안았다가 무방비로 목숨까지 빼앗기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작권 한국일보]산업현장 화학물질 사고현황/김경진기자

◇안전교육 안 받고 독성 증기 마신 젊은이들

2017년 8월 경기 안성시 소재 소화기 제조업체에서도 비슷한 사고로 23살 노동자가 사망했다. 박민석(가명)씨와 이상희(가명ㆍ25)씨는 직원 20여명 규모의 소화기 제조업체에서 일한 지 2주 정도 된 신참이었다. 둘은 주로 소화약제인 HCFC-123를 소화기에 충전 및 주입하는 작업을 했다. HCFC-123은 발포용ㆍ냉매용ㆍ세정용ㆍ소화용 등의 용도로 산업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액체상태의 화학물질. 2017년 기준 국내 가스계 소화기 가운데 HCFC-123 소화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를 정도다.

8월 13일. 작업 중 갑자기 열이 치솟고 어지럼 증세가 심해진 박씨는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혈액검사 결과 각종 간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서둘러 의료진은 박씨를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옮겨 치료했지만, 24일 박씨는 급성 간부전으로 사망했다. 박씨와 동일한 일을 한 이씨도 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 진단을 받았다.

업무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 HCFC-123은 당시 정부가 지정한 관리대상 물질도 아니었기 때문에 노출기준조차 없었고 관리는 더 무신경했다. 현장 조사를 나갔던 조성식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국소 배기장치와 같은 환기시설이 미비했고 방독마스크가 필요한 상황에서 근로자들은 방진마스크만 쓴 채 일하고 있었다”라며 “현장 근로자 말로는 사고 시기 즈음에는 방진마스크조차 지급이 안됐다고 했는데, 이런 부실한 상황에서 일하다 날이 더워지면서 끓는 점이 낮은(섭씨 28도) HCFC-123이 대기 중으로 증발하면서 작업자의 피부와 호흡기를 통해 고농도 노출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사고 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고려대와 함께 한국산업보건학회지에 게재한 ‘HCFC-123의 급성 독성간질환 발생 사례에 따른 노출기준 및 법 관리 필요성 권고’에 따르면 이전에 비슷한 간독성 직업병 사례는 벨기에ㆍ일본ㆍ홍콩에서 발생한 3건의 해외사례와 2010년에 발생한 국내 사례가 보고됐을 뿐이다. 범용성에 비해 인체에 끼치는 해는 드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사고 케이스가 겉보기에 많지 않아 보인 건 조사 부족이 한 원인이기도 했다. 2명의 독성간질환 사례 이후 정부가 같은 사업장에서 최근 3년간 근무했던 퇴직 근로자 22명을 추적해 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환자 1명이 추가로 드러났다. 그는 2017년 4월부터 5월 말까지 약 50일가량 해당 소화기 제조업체에서 근무했고, 퇴직 다음날 급성 간염(독성 간염) 진단을 받아 9월에 산업재해요양신청을 했다. 화학물질 관리부실로 인한 노동자 피해 사례가 더 많았을 수도 있었음을 반증한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업보건학회지 기고에서 ‘HCFC-123은 단회 노출 및 반복 노출 시 급성독성 간염을 유발할 수 있는 특정표적장기 독성 물질’이라며 ‘일반 대중에게 직접 노출될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환기가 잘되지 않는 장소에서 소화기 및 고정소화설비에 대한 수작업 또는 자동 충전 작업을 실시하는 작업공정에서는 작업 근로자의 잠재적인 노출 가능성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는 HCFC-123에 대한 국내 노출기준으로 10ppm(62.5mg/㎡)를 권고했다.

[저작권 한국일보]20대 노동자들이 희생된 주요 화학물 관련 사고/김경진기자

영세 사업장의 화학물질은 정부 관리대상이든 아니든 부실 관리는 마찬가지였다. 사이안화나트륨 사고 작업장은 냉장고에 들어가는 프레스를 대기업 하청업체에 납품하는 5차 내지 6차 업체였고, 소화기 제조업체는 무허가 업체였다. 여기서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지위였다. 정우준 활동가는 “사이안화수소 중독으로 사망한 김씨는 기존 작업으로 보아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 사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박씨와 이씨는 불법 파견 노동자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소화기 제조업체는 법적 관리 대상인 다른 화학물질들의 관리 역시 미비했고, 보호구 미지급 등으로 과태료를 무는 등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정우준 활동가는 “사이안화나트륨 같은 독성물질을 사용하는데 다른 노동자는 왜 괜찮냐고 묻는다면, 다른 노동자들은 오래 일해 어떤 부분이 위험한지 충분히 인지하고 나름의 자기 대처법을 가진 숙련 노동자들”이라며 “안전매뉴얼이 없고, 이직이 잦은 작은 사업장의 경우 선배에서 후배에게로 내려오는 안전관리 지식도 없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일수록 산재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등록만 하면 화학물질을 어느 사업장에나 쓸 수 있지만, 관리 점검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조성식 전문의는 “화학 물질을 많이 다루는 것에 비해 규제가 제대로 돼 있지도 않고, 있다 해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라며 “화학물질 관리가 가능한 규모의 사업장에서만 화학물질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업 중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 및 시력손상 피해를 입은 2명의 노동자가 일했던 경기 부천시 소재 덕용ENG 작업장 모습. 노동건강연대 제공

◇대기업도 책임자 없이 위험작업 떠밀어

위험한 화학물질을 서투르게 다루다 폭발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사례도 잇달았다. 역시 희생자 대부분은 일터에 몸이 익지 않은 젊은 노동자였다. 한화 대전공장에서는 지난해와 올해 사고로 9개월 만에 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중 6명이 20대였다. 지난 2월 14일 오전 화약 및 불꽃제품 제조업으로 분류돼 있는 대전 유성구의 한화 대전공장 내 천무제조공실 이형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3명이 사망했다. 이형(로켓 추진체의 금속 재질의 심인 치구를 분리하는 작업)준비 작업 중 추진체의 코어(치구)와 이것을 빼내는 기계인 유압실린더를 연결하기 위해 유압실린더를 내리는 도중 갑자기 불이 난 것이었다. 현장 작업하던 김승회(31) 김태훈(24) 김형준(24)씨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승회씨는 입사한 지 9년이 됐지만, 태훈씨는 11개월, 형준씨는 한 달 된 인턴 신분에 불과했다.

이곳 충전실에서 지난해 5월 29일 추진체가 터져 5명이 죽고 4명이 다친 사고 또한 위험물질 관리에 익숙하지 않은 20대들을 희생자로 삼았다. 사망자 5명 가운데에서도 30대 1명(31세)를 제외한 4명이 모두 20대로, 평균 사망자 나이가 26세에 불과했다. 당시 대전노동청의 열흘간 특별감독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총 51개 법조문) 위반 건수만 486건이었다. 관리(25건)ㆍ안전(87건)ㆍ보건(108건)ㆍPSM(공정안전보고서ㆍ266건) 등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이 드러나 사법처리 126건, 과태료 322건(총 2억6,156만원), 시정명령 217건 등의 조치가 내려졌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5월 29일 로켓 등 유도무기를 제조하는 한화 대전공장에서 로켓 추진체에 고체 연료를 주입하던 중 폭발사고가 나 5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연합뉴스

한화폭발사고 유가족 대책위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용동씨(고 김태훈씨의 이모부)의 설명을 들어보면, 젊은 노동자들은 경력 많은 사수 없이 갑작스럽게 위험한 작업으로 떠밀렸다. 원래 이형작업은 9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태훈씨는 지게차 운전자로 화약을 채워 넣은 추진체를 충전실에서 경화실로, 경화실에서 이형실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사고 날 태훈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게차를 운전했고, 태훈씨는 이형실에서 승회씨와 화약 관련 작업을 처음 하게 됐다. 형준씨는 품질관리팀의 인턴으로 이 모든 작업의 참관인이다. 원래는 경력 많은 사수가 형준씨를 데리고 다니면서 2인 1조로 작업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날은 형준씨 혼자 작업에 참여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김용동씨는 “지난해 사고 후 11월에 회사에서 ‘위험요인발굴서’를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받아 작성했다. 태훈이와 승회도 의견을 냈고, 이 때 이형실의 문제점도 140여건 지적됐다. 이미 위험시그널은 충분한 상태였다”며 “그런데도 작업환경 개선 없이 위험한 작업이 이어질 때, 20대 막 입사한 청년들이 ‘위험하니까 작업 안 들어가겠습니다’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2월 14일 발생해 노동자 3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 유가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대전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부 특별감독에서도 근로자에 대한 안전ㆍ보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지적됐다. 김씨는 “안전교육을 인사팀이 하고 안전시설관리를 안전팀에서 한다는데 태훈이의 동기들에게 물어보니 입사 3, 4일만에 현장투입 됐다고 했다”며 “위험요인발굴서에서 현장 직원들이 지적한 작업공정 안전에 대해서는 책임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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