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반정부 세력을 이끌고 있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30일(현지시간) 소규모 중무장 군인들과 거리로 나서 군사봉기를 촉구했다. 이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군부의 충성이 확고하다며 건재를 과시했다. 수도 카라카스 인근 공군기지 외곽에선 무장 군인들 간 교전이 벌어지는 등 베네수엘라 정국이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지원 아래 마두로 대통령의 축출을 시도해온 과이도 의장은 이날 오전 이른 시간에 트위터에 올린 3분짜리 동영상에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작전을 시작했다”면서 “이제부터 나는 군의 주요 부대를 만날 것이며 ‘자유 작전’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카라카스의 한 공군기지 근처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이 동영상에서 과이도 의장은 군사작전을 앞둔 것으로 보이는 장갑차 몇 대와 무장한 군 병력에 둘러싸여 있다.
동영상에는 또 과이도 의장의 정치적 멘토이자 반정부 시위 주도 혐의로 가택연금 중인 레오폴도 로페즈 전 카라카스시장도 등장했다. 그는 “군인들이 나를 구출했다”면서 “제복을 입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 평화적인 항의 집회를 하자”고 주장했다. 로페즈 전 시장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마두로 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에 반대하며 대권에 도전했던 유력 정치인이다.
과이도 의장의 이번 군사봉기 촉구는 그가 5월 1일 노동절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예고한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난 1월 말 마두로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자신이 베네수엘라의 임시대통령이라고 주장해온 과이도 의장이 장기간의 대치 상황을 끝내기 위해 과감한 군사행동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CNN 방송은 현지 상황을 속보로 전하며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반정부 세력의 시도가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은 군부가 자신에게 완전한 충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트위터에 “담력! 나는 평화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대의 대중 동원을 소집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썼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호르헤 로드리게스 공보부 장관 명의의 성명에서 “우리는 헌법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군의 소규모 배신자들과 대치하고 있고 이들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면서 “이들의 배후에 살인적인 극좌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로페스 국방부 장관은 “군은 헌법과 합법적인 당국을 확고하게 수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디오스다도 카베요 사회당 대표는 국영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 지지자들은 미국이 후원하는 반역 군인들의 소규모 봉기로부터 마두로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궁에 집결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과이도 의장이 집회를 연 카라카스의 카를로타 공군기지 인근에선 총 소리가 들리고 최루탄도 발사되는 등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목격자들은 집회현장에서 과이도와 함께 있던 군인들이 마두로 정권을 지지하는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였다며 발사된 탄환이 실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과 미국 CNN방송 등이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과이도 의장의 군사봉기 촉구 이후 3시간 동안 추가적인 군사행동의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으며 즉각적인 사상자 보고도 없는 상태라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최루탄이 카를로타 공군기지 내부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고, 로이터통신은 최루탄이 과이도 의장과 군복을 입은 70여명의 무장 남성들을 향해 발사됐다고 보도했다. 과이도 의장은 몇 시간 동안 시위를 주도한 뒤 오전 중에 집회 현장을 떠났다.
마두로 대통령은 작년 5월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해 지난 1월 두 번째 6년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과이도 의장은 작년 대선이 주요 야당 후보가 가택연금 등으로 출마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등 불법적으로 실시됐다면서 마두로를 인정하지 않고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뒤 미국ㆍ영국 등 서방 50여개 국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권 퇴진과 재선거를 주장해왔다.
마두로 대통령은 과이도 의장을 향해 정권 붕괴를 바라는 미국의 후원을 받는 꼭두각시라고 비난하며 러시아ㆍ중국ㆍ쿠바 등의 지지와 군부의 충성을 토태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국은 노동절인 1일이 한 차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과이도 의장의 공언대로 마두로 정권 퇴진을 위한 사상 최대규모의 가두시위가 벌어지고 일부 군 병력이 여기에 가세할 경우 사실상의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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