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챔피언십서 본 갤러리 문화의 명암]
“팬들의 그릇된 행동이 선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꼭 응원지침을 지켜주세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크리스 F&C KLPGA 챔피언십 최종라운드가 열린 28일 오전. 대회장인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파72ㆍ6,610야드) 내 갤러리플라자에선 이날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에 도전한 최혜진(20ㆍ롯데) 팬클럽 ‘월드퀸’ 회원 수십 명이 초록색 모자를 쓰고 한 데 모여 운영진으로부터 ‘현장응원 지침’을 설명 받았다.
운영진이 회원들에게 공유한 지침은 무려 10가지 안팎. ‘반드시 지켜야 할 에티켓’으로 공유된 항목만 살펴봐도 △최혜진과 동반 라운딩 하는 선수에게도 아낌없는 응원 △선수가 홀 아웃을 하더라도 마지막 선수 플레이가 끝날 때까지 이동금지 △선수와 악수ㆍ하이파이브 등 신체접촉 금지 △홀을 이동할 땐 선수와 캐디를 먼저 보낸 뒤 이동 △선수가 어드레스에 들어가면 동작 멈춤 △카메라나 캠코더 촬영은 최대한 자제 등 철저한 제한 사항이 나열됐다.
이날 만난 ‘월드퀸’ 회장 강철호(51)씨는 “이제 ‘내 선수’만 소중한 시대는 지났다”며 “다른 선수 및 해당 선수 팬들을 존중하고, 국내에서 아직은 자리잡지 못한 갤러리 에티켓을 선도하고자 이 같은 지침을 세웠다”고 전했다. 그는 “팬클럽이 지난해 10월 개설돼 신입회원 또는 초보 갤러리가 많은 점을 감안해 매 대회 경기 전마다 빠짐 없이 지침을 공유한다”며 “현재까진 모든 회원들이 에티켓을 잘 지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의 응원수칙을 세워 회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팬클럽의 그릇된 응원문화가 선수 평판에도 영향을 미친단 판단에서다. 실제 수년 전만 해도 일부 그릇된 팬덤 탓에 요란한 응원과 과열된 자리다툼, 인터넷상에선 악플 공세 등으로 경쟁 선수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쳐 팬덤 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컸다. 특히 국내에서 치러지는 미국프로골프(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대회에서조차 에티켓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논란거리로 이어진 바 있다.
올해 LPGA 무대 진출 후 처음 국내 무대에 인사 온 이정은(23ㆍ대방건설) 팬클럽 ‘럭키식스’도 일찌감치 이 같은 응원 방향성을 세웠다. 이들은 이정은에게 ‘꼭 우승하세요’ 또는 ‘이번엔 잘 하세요’ 처럼 부담을 주는 응원 코멘트를 금지하고, 선수의 플레이에 대해 평가를 하지 않도록 하는 등 더 엄격한 지침을 내건다.
실제 이날 현장을 찾은 최혜진과 이정은의 팬클럽 회원들은 저마다 공유된 지침을 수만 갤러리 사이에서 철저히 지켜가며 응원을 펼쳤고, 응원 선수가 경기를 마친 뒤에도 요란한 세리머니 없이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두 팬클럽 운영진들은 “팬클럽의 사소한 실수가 선수 평판이나 더 나아가 대회 성패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단 생각”이라고 입을 모으며 “더 나은 갤러리 문화가 정착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