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극단적 대립에 정치는 파탄지경
패스트트랙, ‘기한 내 협상 결론’ 취지
냉각기 거치되 국회 정상화 서둘러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연동형 선거제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그제 밤 우여곡절 끝에 국회 관련 특위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 이 법안들은 길게는 330일, 짧게는 180일의 숙려기간을 거쳐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된다. 지난해 12월 여야 5당 합의에 동의한 한국당이 빠지긴 했으나, 4당이 마련한 개혁 선거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서 내년 4ㆍ15 총선 구도가 크게 출렁일 전망이다.
논란 과정에서 정치가 파탄 지경에 이른 것은 뼈아프다. 회의 진행을 방해해 폭력ㆍ감금 등의 혐의로 여야가 맞고발한 사람이 70명에 근접하고 지도부가 앞장서 ‘도둑놈들’ ‘좌파 장기독재 음모’ 등의 막말을 쏟아내며 서로 존재를 부정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패스트트랙에 오른 쟁점 법안들이 민의를 왜곡하고 좌파독재를 영구화하는 것이라는 한국당의 주장은 명백히 과하다. 국민 주권의 대표성과 비례제를 강화하는 선거법 개혁은 우리 정치의 숙제였고 검찰 권력의 비대화에 따른 폐해 역시 여야가 줄곧 지적해 온 사안이다.
한국당의 우려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 여당이 패스트트랙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배경에는 소수 정당에 유리한 연동제 선거법 개정을 통해 과반 우호세력을 확보해 국회 지배력을 높이고 ‘검찰 위 검찰’을 만들어 야당 등 반대세력의 저항을 틀어막으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법안이 추진된 시대정신과 명분을 외면한 채 강퍅한 의심만으로 국회선진화법의 정신을 뒤엎는 물리력을 행사한 것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한국당은 ‘민주주의의 종언’ 운운하며 장외투쟁을 예고했지만 그럴수록 황교안-나경원 체제의 리더십 빈곤과 전략 부재만 돋보일 뿐이다.
청와대와 민주당도 안도할 때가 아니다. 관심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운 것은 긴 항해의 시작일 뿐, 당장 거의 파탄지경에 이른 국회와 정국을 정상화하는 과제가 급하다. 야당을 향해 원색적 독설을 퍼붓던 이해찬 대표가 “한국당과 성의 있게 선거법 협상을 하겠다”고 밝힌 것은 다행이지만, 당내에서 ‘한국당의 곡소리’ 운운하며 불법에 대한 무관용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니 ‘이해찬 정치’의 정체를 알기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패스트트랙은 ‘동물 국회’의 추태를 되풀이 말자며 여야 합의로 마련한 안전판이다. 충분한 시간을 줄 테니 국민의 대표라면 그 기한 내에 책임있게 결론을 내라는 제도다. 쉽게 말해 여야 지도부가 정치력을 발휘해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정치 비즈니스를 하라는 취지다. 냉각기는 필요하나 그 시간이 길면 파산과 공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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