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이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유출당했다며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하면서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2차전지 관련 기술을 빼갔다는 주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인력 채용은 정당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고 반박했는데, 2차 전지 기술을 둘러싼 국내 기업간 분쟁이 해외 법정에서 판가름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LG화학은 29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했다고 30일 밝혔다. LG화학은 ITC에 SK이노베이션의 2차전지 셀, 팩, 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 전면 금지를 요청했고,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 소재지인 델라웨어 지방법원에는 영업비밀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은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ITC 및 연방법원이 소송과정에 강력한 ‘증거개시(Discovery)절차’를 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법원은 소송 당사자가 소송과 관련해 갖고 있는 각종 정보ㆍ자료에 대해 상대가 요구할 경우 제출할 법적 의무를 부과한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지난 2017년부터 2년 동안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자사 전지사업본부 76명의 핵심인력을 빼갔고, 이 과정에서 기술 유출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은 이들의 입사지원 서류에 2차전지 양산 기술, 핵심 공정과 관련된 영업비밀이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담겨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이 이직하기 전 회사 시스템에서 개인당 400~1,900여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 하는 방식으로 선행기술, 핵심 공정기술을 빼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자사의 2차전지 기술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이직자가 다운받았다는 파일은 SK이노베이션의 업무와 직결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직자의 입사지원서에 과거 수행한 프로젝트를 적도록 한 것은 영업비밀을 빼내기 위한 게 아니라 업무능력과 경력을 투명하게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SK이노베이션 측은 밝혔다. 다른 경력직원들의 지원서류 항목과 똑같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이직자들에게 기술유출을 지시했는지 여부도 재판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LG화학 관계자는 “증거개시 절차 등 재판을 통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 측은 “면접 때 사전 고지로 영업기밀에 대한 이야기는 자제하도록 요청했다”고 맞섰다.
LG화학은 지난 2017년 10월과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 측에 내용증명 공문을 보내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이 높은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 중단’을 요청했음에도 SK이노베이션이 이에 응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LG화학 관계자는 “지난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핵심 직원 5명에게 제기한 전직금지가처분 소송과 관련해 올해 초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라며 “경력직원의 의사에 따른 이직이었으며 영업비밀 침해가 없었다는 점을 법적 절차를 통해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지난 2011년에도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2차전지 무기물 코팅 분리막 제조기술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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