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Y세대), Z세대들은 사회에서 마땅히 발붙일 곳이 없다. 취업이 어렵고, 기껏해야 주어지는 경험은 인턴이나 비정규직이다. 경험과 경력이 부족하니 직장을 못 잡고, 직장을 못 잡으니 경력은 점점 더 경쟁력이 없어진다. 징검다리가 떠내려가 버린 형국이다.
이러한 경제적 소외는 문화적 소외와 연결된다.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형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보니 구매력이 있는 소비층도 중장년에 몰려 있다. 아이 같은 어른, ‘키덜트’라는 말도 결국은 비싼 공연을 보러 다니고, 고가의 캐릭터 피겨를 구입하는 큰손이 중ㆍ장년층에 몰려있음을 보여주는 단어다. 우리 일상의 흔한 대화 소재가 되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밀레니얼들이 별로 공감할 수 없는 유머코드를 가진 중년, 그것도 남성들이 텔레비전을 지배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지배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40대가 주류이고, 50대 후반도 있다. 가장 젊어봐야 30대 초반이다. 현재 주류 예능인들은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실력 있는 예능인들이 맞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이하 세대의 새싹들에게는 기회마저 잘 주어지지 않는 현상이, 예능뿐만 아니라 교육계, 산업계 전반에 팽배하다. 그러니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 공사 시험에 몰릴 수밖에.
텔레비전을 켜도 볼게 없으니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덕후’ BJ들이 있는 유튜브로 피난을 갔다. 심지어 텔레비전을 볼 때조차도, 자신이 좋아하는 BJ가 등장하는 개인방송 형식의 프로그램을 즐긴다. 그들만 알아듣는 표현이 난무하고, 그들만의 웃음코드가 빵빵 터지지만, 아무튼 스스로 행복하면 되는 거다. 그런 세대가 머리를 내밀고, 세상을 바꾸려고 꿈틀하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가 열심히 유튜브를 보길래, 고개를 들이밀고 함께 봤다. 스포츠스태킹이라는 신종 스포츠다. 333이라는 종목의 경우 컵 9개를 가지고 세 개씩 쌓고 내리는 경기다. 세계 최고 기록은 1초대이며, 우리나라의 10대들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뿐인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큐브가 이젠 글로벌 스포츠가 되었다. 세계 무대를 주름잡는 탑랭커에 매년 꼭 우리 청(소)년들도 들어간다. 그들은 0.1초라도 더 빨리 큐브를 맞추기 위해 오늘도 유튜브를 보며 기술을 연마한다. 구세대 사고방식으로는 국부 형성에 아무런 도움도 안될 성싶은 이런 스킬에 온 신경을 집중해 몸을 던지는 청소년들이 우리의 희망이다. 이렇듯 엉뚱한 일처럼 보이는 새로운 방향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할 젊은이들을 지원해야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예능 프로그램으로 돌아가 보자. 관찰예능이라는 형식이 주류로 부상하면서 주인 역할은 중ㆍ장년이 맡고 10대, 20대는 기껏해야 손님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잦다. 그 주인들은 여러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 자신들만 이해할 수 있는 80, 90년대 유머코드로 시청자를 붙잡는다. 인구가 많으니 시장이 크고, 시장이 크니 중심이라는 논리다.
새 얼굴에게 기회를 주는 의도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평가받는 무대를 더 많이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기존의 아성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뉴페이스들을 부각시키고 공개 경쟁토록 하는 풍토가, 끊임없이 기존의 실력자로 쏠림이 반복되는 관성을 눌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나이에 상관없이 공개 경쟁하는 무대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얼마 전 ‘전국노래자랑’에서 애교 넘치는 댄스와 함께 ‘미쳤어’를 부르던 노인이 바로 젊은이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놓기 싫어 남들에게 많은 것을 강요하는 사람이 바로 늙은이다. 이 무궁무진한 능력자들의 나라에서 무대는 너무 좁고 부실하다. 판을 흔들고, 갈아엎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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