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ㆍ대안 정당이 급부상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정치권의 주류를 형성했던 중도세력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연정 형태의 ‘소수파’ 집권당이던 좌파 성향 사회노동당(PSOE·사회당)이 제1정당으로 부상하는 한편, 1975년 스페인 민주화 이후 최초로 극우성향의 ‘복스(VOX)’가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정치 스펙트럼으로 따지면 중간지대가 허물어지는 대신 각각 왼편과 오른쪽으로 편향된 정당이 크게 약진한 것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선거에서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회당은 전체 350석 중 123석(28.7%)을 확보했다. 반면 134석으로 제1당이었던 우파 국민당(PP)는 66석(16.7%)을 차지하는 데 그쳤고, 중도우파 성향의 시민당과 극좌 포데모스는 57석(15.9%), 42석(14.3%)을 차지했다. 완승을 거둔 당 없이, 전부 갈래갈래 쪼개진 것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과거에는 유럽의 정치가 기독교 기반의 중도 우파 정당과 노동조합 기반의 중도 좌파 정당에 의해 구성됐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또 “중도성향이 주도하는 오래된 정치 시스템이 ‘분열된 의회’로 바뀌면서 많은 유럽 국가들이 통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흐름은 카탈루냐 독립추진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극우 성향의 ‘복스’의 약진에서도 드러난다. 국민당의 극우성향 인사들이 5년전 탈당해 만든 정당인데, 24석(10.2%)을 확보했다. 전통 우파 국민당이 사회당에 지고, 복스에는 표를 뺏기면서 스페인 정치 지형이 양극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적 불평등과 난민 등 현실 문제를 중도세력이 해결하지 못하면서 각각 진보와 보수로 방향만 다를 뿐 극단적 해법을 제시하는 정당이 득세하는 게 대세가 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수년 전부터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을 위한 대안’(AfD),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 극우 성향 정당이 선거에서 약진하고 있다. ‘극우 돌풍’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북유럽 핀란드에서도 지난 14일 총선에서 좌파 사회민주당(17.7%)과 근소한 차이로 극우 성향의 핀란드당(17.5%)이 제2당에 오르기도 했다.
유럽의 ‘정치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 현상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런던정경대 사이먼 힉스 교수의 ‘사회민주주의의 부흥과 쇠퇴’ 연구에 따르면 독일 등 서유럽 14개국의 2007년부터 2016년까지의 중도 우파(36%→29%)와 중도 좌파(31%→23%) 성향 정당의 득표율은 크게 감소했다. 반면 극우 정당 득표율은 7%에서 15%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문제는 중도층이 붕괴되고, 양극단 정치 세력이 불가피하게 연정을 구성할 경우 정치적 혼란이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업체 스트랫포(Stratfor)는 지난 25일 최근 유럽에서의 선거 결과를 보면 정치 지형이 파편화되고 있다면서 “이런 분열은 총선 결과를 더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고, 새 정부 구성을 늦춘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 연정은 더욱 ‘이질적’이 될 것이며, 더욱 복잡한 정책 입안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6월 이탈리아에서는 반체제 성향의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이 연정을 꾸렸지만 너무 상반된 정책 지향 때문에 출범 직후부터 충돌하고 있다. 스페인 사회당 역시 이념이 비슷한 포데모스와 연정을 이뤄도 165석으로 과반(176석)에는 못 미친다. 과반 확보를 위해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표방하는 정당들과 연정을 모색할 경우 ‘하나 된 스페인’을 선호하는 극우ㆍ우파를 자극해 또다시 정치적 혼란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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