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낮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있는 포시즌스호텔서울의 중식당 ‘유유안’에서 특별한 코스 요리가 소개됐습니다. 3일간 숙성해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북경오리 요리가 주 메뉴인 중식 코스에 엉뚱하게도 ‘어머님의 칼국수’라는 메뉴가 포함된 겁니다. 유유안은 국내 호텔에서 유일한 1스타 미쉐린(미슐랭) 중식당입니다. 중식 코스 가격이 1인당 10만원을 훌쩍 넘는 5성급 호텔에서 단돈 5,00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이 같이 나오다니, 과연 무슨 일인 걸까요.
바로 세계 최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업체 ‘넷플릭스’의 영향입니다. 넷플릭스는 지난 26일부터 다큐멘터리 시리즈 ‘길 위의 셰프들 아시아(Street Food Asia)’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한민국 서울편’에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조윤선씨가 주인공으로 소개됐는데요. 그녀의 아들이 포시즌스호텔의 중식당에서 일하는 이수환 셰프입니다.
지난해 이들의 사연을 취재한 넷플릭스는 카메라에 어머니와 아들의 일상을 담았습니다. 호텔 중식당의 셰프들이 대부분이 중국인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인 중식 셰프의 존재는 특별했으니까요. 어머니는 시장에서 10여년 동안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칼국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디딤돌 삼아 아들은 요리사의 꿈을 키웠고, 3년 전 드디어 세계적인 호텔 체인에 주니어 셰프로 입성했습니다.
모자(母子)의 사연을 넷플릭스를 통해 알게 된 포시즌스호텔은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여간 해선 공개하지 않는 콧대 높은 호텔 주방을 오로지 어머니 조씨에게 개방한 거죠. 그리고 아들의 요리에 어머니의 음식을 더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코스를 선보였습니다. 조씨는 이날 “아들이 일하는 호텔에 처음 와 봤다”며 “세계적인 호텔의 주방에서 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자랑스럽고 흐뭇하다”고 기뻐했습니다.
포시즌스호텔로선 한국 여행을 준비하는 관광객이나 비즈니스맨들에게 호텔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넷플릭스 덕분에 확보한 셈입니다. 이 셰프 모자 사연이 방송된 걸 계기로 막대한 비용이나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호텔과 중식당을 한번에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선보였으니까요. 지난해 말 기준 전세계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1억4,000만여명이고, 국내 가입자도 8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명 호텔의 코스 메뉴에 깜짝 등장한 칼국수 한 그릇에서 넷플릭스의 위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호텔과 전통시장 이외에 국내 유통업계 전체로도 확산되는 건 시간 문제일 듯합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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