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희생자 장환봉 씨 등 3명
재심 청구 8년 만에 첫 공판 열려
“오늘 재심은 제 아버지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로 집단 학살한 국가가 저지른 추악한 범죄를 심판하는 날입니다.”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불법 체포돼 처형된 아버지를 대신해 재심을 청구한 장경자씨는 “자식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내란 및 국권문란죄)를 받고 처형당한 민간인 희생자 장환봉(당시 29세), 신태수(32), 이기신(22) 3명에 대한 재심 첫 공판이 29일 오후 2시 광주지법 순천지원 316호 형사법정에서 형사1부(부장 김정아) 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에는 재심을 청구한 유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장경자(74)씨와 변호인, 공판검사가 출석한 가운데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됐다. 재판부는 재심 진행 방식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입장을 확인하고 20여분 만에 첫 공판을 마무리했다.
당시 순천 시민이었던 장씨 등은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처형됐다. 장씨 유족 등은 2011년 10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1ㆍ2심에서 재심이 결정됐으나 검찰의 항고가 이어졌고 대법원은 7년5개월만인 지난달 21일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공판을 시작하면서 “여순사건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건물과 운동장, 산천에 아로새겨진 우리의 아픈 과거사로 사건 발생 71년, 재심 청구 8년이 지나는 등 유가족에겐 너무도 길었던 통한의 시간이었을 것”이라며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 명예회복을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으로 법원은 그 책무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검찰도 “이 사건은 판결서가 존재하지 않아 심판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으로 공소 기각될 수밖에 없지만 절차적인 문제 때문에 공소가 기각되는 것은 실체적 진실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료 수집에 노력하고 재심이 시작된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 책임감 있게 재판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장경자씨는 심경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수많은 사람의 죽음이 오랫동안 묻혀있었고 반란이라는 불명예 속에서 고통 받으며 살아왔다.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며 “남아있는 희생자 가족들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재판을 이른 시일 안에 마쳐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여순사건 유족들과 재심대책위원회는 재판 직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적인 국가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인권을 유린당했던 학살에 대해 준엄한 심판으로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며 “검찰은 국민과 유족 앞에 사죄하고 대통령과 국회는 하루 속히 여순사건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다음 재심 재판은 6월 24일 오후 2시 열린다.
순천=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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