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일본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이끌어온 아키히토(明仁) 왕이 30일 퇴위식을 갖고 물러난다. 5월 1일에는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새 일왕으로 즉위해 연호 레이와(令和) 시대의 막을 연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일왕의 지위는 새 헌법에 따라 상징적 역할로 축소됐다. 총리와 장관 임명, 국회 소집과 해산, 헌법과 법률 개정, 외국과 조약 승인 등 중요 국가업무를 최종 결정하지만 모두 국회와 내각의 승인을 추인할 뿐이다.
이름뿐인 국가대표지만 영국 등 서구 몇몇 나라처럼 입헌군주제 전통을 유지하는 일본에서 왕의 의미는 각별하다. 이 제도와 단절한 나라가 보기엔 생경하지만 일본인들은 왕을 존경의 대상으로, 왕 교체를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큰 전환으로 받아들인다. 패전 직후 전쟁 책임을 물어 천황제 폐지를 검토했던 연합군이 존속을 결정한 것도 이런 ‘국민통합’ 효과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루히토 새 일왕에게 평화주의에 기반한 역량 발휘를 기대하는 것도 이 같은 존재감과 무관치 않다. 아키히토 일왕은 재임 중 기회 있을 때마다 “평화”를 말하면서 “과거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일본이 세계 여러 사람들과 교류해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후 세대인 나루히토 새 일왕 역시 “겸허히 과거를 돌아보며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아베 정권은 침략의 역사를 회피하며 ‘정상국가’라는 미명 아래 군사력 강화로 치닫고 있다. 비록 정치 권한은 없다 해도 새 일왕이 일본 정부를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구심점이 돼주기를 바라는 이유다.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 개선 역할도 기대한다.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 자손”이라고 했던 아키히토 일왕은 왕세자 시절부터 수차례 한국 방문 계획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나루히토 새 일왕의 방한은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최근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퇴임 후 아키히토 일왕의 방문도 다시 추진해볼 만하다. 어떤 형태로든 일왕 부자의 한국 방문은 한일 관계 개선의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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