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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의 낭떠러지에서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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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의 낭떠러지에서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입력
2019.04.2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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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범한 아침이었습니다. 나디아는 엄마와 언니 오빠, 조카들과 함께 양떼를 키우고, 양파를 수확하며 살았습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온 가족이 옥상에서 별을 보며 잠들 거라고 생각했죠. 오빠들을 포함한 마을 남자들이 전부 총살되고, 강제로 버스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말입니다.


2014년 9월, 이슬람 무장단체 IS의 공격을 받은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디족 마을 ‘코초’의 이야깁니다. 그날 코초의 남성과 나이든 여성은 전부 총살 당했고, 나디아를 포함한 젊은 여성들은 누군가의 성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 프란이 소개할 콘텐츠는 전쟁 성범죄 생존자이자,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나디아 무라드의 ‘더 라스트 걸 (The Last girl)’ 입니다.

“너희는 사비야가 되려고 여기 왔다”

목에 총을 겨눈 남자의 한 마디를 나디아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사비야’는 중세시대 단어로, 노예라는 뜻입니다. 평범한 이십 대였던 나디아가 노예가 된 이유는 단 하나, 이교도였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IS는 다른 신을 믿는 야지디족을 이교도로 간주하고, 노예로 삼아도 된다고 결론지으며 여성들을 전쟁의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모술’이라는 도시로 끌려간 나디아는 한 남성의 ‘사비야’가 됩니다. 거기서 처음으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경비병들에게 윤간당하는 벌을 받기도 하죠. 나디아는 경비병 가운데 누군가 강간할 차례가 되자 안경이 깨질까 봐 탁자에 얌전히 내려놓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가 고작 안경은 그렇게 소중히 다루면서 사람인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 잊을 수 없다는 고백은 사실적이라서 더 참담합니다.

다행히 세달 뒤 극적으로 탈출한 나디아는 UN에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증언하고, 인권운동가로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나디아 무라드 / 2016년 UN 친선대사 연설

“참수, 성노예, 아동 강간에 대해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면 도대체 언제 행동하라는 말입니까?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평범한 삶을 살 자격이 있습니다.”


‘전시 강간’이라고도 불리는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응징, 보복, 민족 말살 등 다양한 이유를 내건 인종 학살, 즉 제노사이드의 한 유형입니다. 90년대 내전으로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강간 피해를 입은 르완다, 그리고 두 달 전 세상을 떠난 김복동 선생님을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마찬가지죠. 나디아는 스스로 “전쟁범죄의 희생자라는 최악의 일면에서 그들과 공통점을 갖는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성이 되고 싶다”고 소망하죠. 하지만 여전히 수 천명의 야지디족 여성들이, 그리고 대부분의 세계 분쟁지역 여성들이 전쟁 성범죄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디아가 주장하는 것은 ‘인류애’입니다. 삶을 파괴한 가해자들을 증오하지만 새 삶을 꿈꿀 수 있게 탈출을 도운 것 역시 다름아닌 ‘사람’ 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디아 무라드 / 2016년 UN 친선대사 연설

“우리는 국경을 닫지 말아야 합니다. 폭력을 피해 도망쳐 온 죄 없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박해 받는 소수자들 편에 서야 합니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국경밖에 없습니다. ‘인류애’ 말입니다.”


오늘의 프란 코멘트

“인류애의 낭떠러지에 서도 여전히 사람이 희망이다”

프란이 선택한 좋은 콘텐츠, 다음주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박고은 PD rhdms@hankookilbo.com

현유리 PD yulssluy@hankookilbo.com

정선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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