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상황 인프라ㆍ인력 엉망인데
사회적 논의는 입원 강화에만 집중
현장 전문가들 “예산 대폭 늘려야”
정신질환자 당사자와 가족들이 정부에 다양한 정신건강 응급체계를 구축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말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 살해사건, 지난 17일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사건 등 잇딴 흉악범죄 때문에 범죄자 취급을 받자, 정신질환자들이 직접 대책마련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환자단체를 포함해 16개 보건의료관련단체가 모인 ‘정신건강서비스 정상화 촉구 공동대책위원회’가 26일 청와대에 제기한 이런 내용의 청원은 3일만에 참여자 1,560명을 넘어섰다.
청원 내용을 요약하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아니면 강제입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진주 참극의 피의자 안인득이 강제입원 트라우마 때문에 입원을 거부해 조현병 증세가 심각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다양한 보호서비스와 의학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불행한 사건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입원 포함 전체 응급체계 만들어야
대책위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권역별 위기대응센터 구축 △정신건강복지센터 강화 △위기쉼터 설치 등 인프라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지역사회에서 증상이 심해져 위험한 상황에 놓인 정신질환자를 발견할 경우, 위기대응센터의 24시간 응급콜센터가 위기상황에서 응급대응팀과 경찰ㆍ119구조대의 출동 여부를 판단한다. 응급대응팀의 대처에도 환자가 안정되지 못하면 이후 위기쉼터 보호나 응급입원 절차로 연계하는 방식이다.
정신질환자 단체인 정신장애와인권파도손의 박환갑 사무총장은 “병원 입원에 트라우마가 있는 환자들은 위기쉼터에서 증상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질병 관리에 성공한 동료상담가들이 ‘너 이대로는 힘들어지니까 병원에서 좀 쉬다 오자’라고 권유할 수도 있고 현재도 그런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서울 등 5개 시ㆍ도만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광역 응급대응팀을 2024년까지 전국 17개 시ㆍ도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밖에 응급입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병원에 지급하는 건강보험 수가 인상도 추진한다.
◇현장 전문가들 “예산 대폭 늘려야”
그러나 사회복지사 등 현장 인력들 사이에선 불신이 크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진주사건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좌담회에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부가 대책만 홍보하고 예산과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전준희 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은 “지난해 정부가 기초자치단체들에 응급대응팀을 만들라고 했더니 단 2개 지역만 신청했다”면서 “지자체가 재원을 마련해야 정부가 지원하는 매칭펀드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전 협회장은 “정부도 정치인도 신경 쓰지 않는 예산은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응급상황 대응의 핵심기관인 정신건강복지센터 역시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 243곳에 설치돼 있지만 운영비를 지자체가 부담하기 때문에 서비스 수준차이가 크다. 정부는 일부 사업에 대해서만 예산의 50%를 지원한다. 진주시가 속한 경상남도의 경우, 정신센터 운영비를 포함한 1인당 정신건강예산은 전국 꼴찌인 2,557원으로 상위권인 서울(4,075원) 충북(5,660원)의 60%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센터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각종 캠페인까지 챙기느라 응급대응은 뒷전이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김성우씨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자살예방 등 사회적 이슈가 떠오를 때마다 새로운 사업이 추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창현 원진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입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인프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현재 정신건강복지예산이 전체 보건 예산의 1.5%에 불과한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수준으로 가려면 5%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정익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현재 내년도 예산 마련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면서 “사건의 여파가 큰 만큼 이번엔 재정당국도 전향적으로 예산 확보에 나서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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