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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고양이 더 격하게 사랑하고 싶다면 깎아 보는 건 어때요?

입력
2019.05.01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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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목공방 인기… 털 길이 등 세심히 관찰해야 표정ㆍ몸짓 표현 

 공들여 조각하다 보면 더 사랑스러워져 

김빛나씨가 깎은 네 마리 고양이 조각. 공방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자신의 고양이 고니, 아코, 까꿍, 봉봉을 닮은 조각을 깎았다. 김빛나씨 제공
김빛나씨가 깎은 네 마리 고양이 조각. 공방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자신의 고양이 고니, 아코, 까꿍, 봉봉을 닮은 조각을 깎았다. 김빛나씨 제공

녀석들은 여기저기 숨어있었다. 웅크리고 뻗고 기대고 앉고 눕고 자고 걷고 장난치고 책을 읽고. 선반과 테이블 위는 물론 거울, 액자, 전등, 수저, 시계 위 같은 뜻밖의 자리에까지. 나무로 만든 고양이 조각들은 저마다의 자세로 목공방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십 가지의 포즈와 체형의 향연이 펼쳐진 가운데 이들이 뽐내는 공통점이라곤 그 표정이 한결같이 심드렁하되 우아하다는 것뿐. ‘고양이 목조각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에 들어선 한 목공방, 숨바꼭질하듯 곳곳에 포진한 고양이 목조각은 언뜻 보기에도 100마리는 넘어 보였다.

지난달 18일 찾은 경기 고양시 ‘스튜디오 앤캣’. 나무 고양이 조각들이 도도한 눈길로 지켜보는 가운데, 열띤 조각 수업이 한창이었다. “해도 해도 왜 실력이 늘지 않지.” 스튜디오 개설 시기부터 꾸준히 수업에 참여해, 2년째라는 김빛나씨는 미술을 전공한 프리랜서 작가답게 매끈한 곡선을 깎아 내고 있었지만, 어딘가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기 얼굴 옆선을 조금 남겨두고 귀 쪽을 깎아 나가봐. 눈이 빵실한 얘는 얼굴을 너무 너부데데하게 깎으면 안 닮아 보여.” 강사이자 스튜디오 주인장인 윤소라 대표가 나이프를 들고 시범에 나섰다.

입구에서 집사들을 맞이하는 다양한 포즈의 고양이 목조각들. 김혜영 기자
입구에서 집사들을 맞이하는 다양한 포즈의 고양이 목조각들. 김혜영 기자
고양이 조각에 집중했다. 털의 길이와 방향, 무심한 표정, 곡선으로 펼쳐지는 라인 등을 잡아 내는 것이 관건이다. 김혜영 기자
고양이 조각에 집중했다. 털의 길이와 방향, 무심한 표정, 곡선으로 펼쳐지는 라인 등을 잡아 내는 것이 관건이다. 김혜영 기자

두 사람이 집중해 완성 중인 것은 두 발로 선 고양이 조각이다. 처음 빛나씨의 뮤즈가 됐던 고양이는 고니, 아코, 까꿍, 봉봉 등 자신이 키우는 네 마리 아이들이다. 이 넷을 닮은 조각은 이미 완성해 뒀다는 그는 곧 미국으로 떠날 지인의 고양이를 닮은 조각을 만들고 있었다.

“친한 언니가 미국에 1년간 가 있을 일이 있어서, 제가 그동안 언니 고양이 두 마리를 맡아주기로 했거든요. 가 있는 동안 냥이(고양이)들 보고 싶을 때 보라고 닮은 조각 만들어 선물하려고요. 얘네들 얼굴 보며 계속 만들다 보니 저도 벌써부터 내 새끼 같고 정이 든 것 같아요. 고양이들은 바라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어요.”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네모반듯한 목자재는 빛나씨의 손을 거치며 조금씩 두 마리 고양이, 시로와 키로의 표정을 닮아갔다.

맞은 편에 자리한 김명미씨가 씨름하고 있는 조각은 토실토실한 고양이 앞발 모양이었다. 그는 마가, 마린, 마야 등 세 마리 고양이의 집사(애묘가를 뜻하는 말)다. “제 사랑은 너무 넘치는 데 얘네들이 결코 쉽게 발을 내어주지 않는답니다. 꼬물꼬물 너무 귀여운 발 모양을 만들어서 사진 찍을 때 활용하려고요. 실은 이 공방에서 다른 분이 깎는 걸 보고 반해서 허락을 구했어요. 따라 해도 되냐고.” 안 그래도 고양이들이 오동통한 앞발로 뭔가를 움켜쥔 사진을 더 자주 찍어주고 싶었는데, ‘까칠한 아가’들의 도주에 지쳐있던 명미씨에게 ‘고양이 앞발 조각’은 취향 저격 여가였다.

명미씨가 고양이 앞발 조각에 집중했다. 꼬물꼬물한 발바닥의 느낌을 재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김혜영 기자
명미씨가 고양이 앞발 조각에 집중했다. 꼬물꼬물한 발바닥의 느낌을 재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김혜영 기자

열혈 집사들로 가득한 이 묘한 목공방이 문을 연 것은 약 2년 전. 모든 일은 원래 가구 제작을 취미로 해온 윤 대표가 ‘고양이에 빠지면서’ 시작됐다. “시작은 고양이였어요. 남편이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이 아이가 보고 있으면 자꾸 보게 되고 뭔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안 그래도 뭐 취미 하나에 빠지면 깊이 빠지는 편이라 카빙, 도자기 등에 몰두해 있었는데 ‘아 우리집 고양이 한번 깎아봐야겠다’ 싶어 유튜브를 보고 엄청 공부를 했죠.”

꾸준한 작업의 과정과 결과물을 블로그에 올려뒀는데, 이를 본 이웃이 고양이 박람회 참가를 권유하면서 일이 커졌다. “박람회에 가지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한 번 많이 만들어볼까? 싶어서 작은 공방을 열었는데, 박람회에서 생각보다 엄청난 관심, 문의, 호응이 있었어요. 수업에 대한 문의도 많고. 그게 여기까지 온 거죠.”(웃음)

8주간 기본 도구 사용법을 익히고, 이후 나름의 응용방법을 함께 익혀나가는 ‘고양이 목조각’ 수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 번 나무를 손에 쥐면 기본 2,3시간은 몰두해야 하는 데다 수업료는 조각 원데이 클래스는 8만원 정규는 25만원 등이지만, 매주 많게는 15명씩 수강생이 파주, 인천 등 각지에서 수업을 찾아온다.

“재미있어 보여요. 그런데 왜 하필 조각이고, 왜 하필 고양이일까요?” 지나치게 원론적인 질문에 윤 대표와 수강생들의 고개가 동시에 갸우뚱 돌아갔다. "글쎄요. 그러게요." 이미 깊은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설명 가능한 이유란 없었다. ‘이렇게 종일 공들여 조각할 정도로 고양이와 깊은 사랑에 빠진 건 대체 언제 어디에서부터 왜였는지 대보라’는 식의 질문에, 조각에 한창이던 공방은 미궁에 빠졌다.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며 급히 사과를 하자 이유를 꼭 찾아주겠다는 의무감으로 다들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지만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 묘한 수업을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곳곳에 포진한 고양이 소품들. 김혜영 기자
곳곳에 포진한 고양이 소품들. 김혜영 기자

“냐옹~” 명미씨의 휴대폰이 울었다. 문자 알림음이었다. 웃음보가 터졌다. “벨소리도 고양이 소리야” 누군가 귀엽다는 듯 핀잔을 줬다. 명미씨가 수줍게 말했다. “예전엔 강아지만 키웠는데 어느 순간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학원 옆에 누가 버리고 간 아이(고양이)를 데려와 키웠는데, 그렇게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늘었어요. 막내 마야는 여기 공방 근처에서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채 길가에 발견된 애였죠. 고양이 조각을 하다 만났으니 정말 묘연인거죠.”

모라 나이프 120번으로 고양이 발 조각을 매만지며 그가 말을 이어갔다. “원래 나무 그릇을 만들러 왔다가 고양이 모양을 깎기 시작했는데 너무 스트레스가 풀려요. 공방에 오면 나무 향도 좋고 사각사각 나무 깎는 소리도 듣기 좋고, 조각하려고 계속 얘네들 사진을 보고 있으면 끊임없이 사랑에 빠져요. 무늬, 털, 색 등을 분석하면서 나름대로의 사랑에 다시 빠지는 거죠.”

윤 대표가 거들었다. “고양이들이 참 신기한 자세를, 말도 안 되는 자세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세상 편해 보이는 자세에서부터 ‘왜 저러고 있나’ 싶은 세상 불편한 자세까지. 가끔 어이없는 포즈를 하고 있어요. 아주 거만하다거나, 아주 엉뚱하다거나. 그게 매력인 거죠. 그러고 있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창작욕이 샘솟아요.” 모르겠다던 이유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수업이 심화 과정으로 갈수록 웅크린 자세, 비대칭 자세 등 다양한 자세에 도전한다. “중요한 건 관찰이에요. 이런 자세를 할 때 곡선은 어떻게 이어지는지, 털이 장모종인지 단모종인지에 따라 각 자세에서 털은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등을 관찰하고 고민하는 재미가 있는 거죠.”

“맞다”고 격한 맞장구를 치던 명미씨가 휴대폰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우리 마야가 자기가 빨래인 줄 알고 빨리 건조대에 늘어져 있는 거에요. 세상 불편해 보이는 자세를 세상 편하다는 표정으로 하고 있는 이런 귀여운 장면을 보면 창작욕이 샘솟는다는 말이 공감가요.”

문제의 말도 안되는 포즈. 마야는 자신이 빨래인 줄 아나보다. 김명미씨 제공.
문제의 말도 안되는 포즈. 마야는 자신이 빨래인 줄 아나보다. 김명미씨 제공.

“너무 귀여워!” 마야 사진을 바라보던 빛나씨가 외쳤다. 사랑 지극한 집사인 건 빛나씨도 마찬가지다. 2001년부터 고양이를 키워온 그는 당시 동물병원에서 듣던 말이 생생하다고 했다. “저희는 개만 돌봐요. 고양이는 안 봐요. 그랬어요. 고양이 봐주는 병원 찾아서 파주에서 장충동까지 다니고 그랬어요. 그렇게 힘든데도 이상하게 고양이는 다 이쁘더라고요. 내 아이 뿐 아니라 길에 다니는 애들까지도요.” 자신의 고양이 네 마리, 미국으로 향하는 친한 언니를 위해 1년간 맡아 키울 두 마리, 단체의 의뢰로 임시보호 중인 두 마리 등 총 여덟 마리 고양이와 배우자가 빛나씨의 집을 가득 채울 예정이었다.

고양이의 형체를 갖춰가는 조각. 김혜영 기자
고양이의 형체를 갖춰가는 조각. 김혜영 기자

사각사각 나무를 깎는 시간의 고요, 물씬 코를 적시는 나무의 향기, 고양이의 귀와 꼬리와 등줄기를 구성하는 고상한 곡선, 때로 기품 있고 때로 장난스러운 온갖 포즈, 까칠하지만 아름다워 자꾸 눈길이 가는 표정. 어쩌면 ‘고양이 목조각’은 위로 그 자체의 총화라는 얘기다. 이토록 집사들의 창작욕에 솟구치는 까닭인지, 목조각이 아니더라도 이를 자극하는 온갖 창작활동이 신설되고 있다. 양모펠트, 도자기 공예, 초상화 그리기, 인형, 스티커, 피규어 등 그 종류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관련 박람회를 가득 채운다는 ‘집사들의 열혈 창작생활’ 이야기를 듣다가, 명미씨가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고양이에게 야박하잖아요. 학대도 많고, 미워하고. 그런 걸 많이 접하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바뀌고, 화도 나고 애틋하고 그래요. 그래서인지 집사들 특징이 자꾸 주변을 설득시키려 하는 거죠. ‘고양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자꾸 주변에 설득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할까요. 보세요. 얼마나 곡선도 자세도 우아하고 예쁜지.”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국 동물보호센터 수용 유기동물은 10만2,500여 마리 수준이다. 그중 98.9%가 개와 고양이다. 특히 이들 중 길고양이는 매년 잔혹 학대 및 살해 사건 뉴스가 끊이질 않는 대상이다. 한국에서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건 또 다른 의무감을 자극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고양이의 무해함을 설득해야 할 의무. 윤 대표는 고양이 조각에 관한 책도 집필하는 중이다.

공방 한켠을 차지한 고양이 모빌. 김혜영 기자
공방 한켠을 차지한 고양이 모빌. 김혜영 기자

느린 관찰과 재현을 통해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는 일, 그 완성품을 통해 세상에 고양이의 미학적 완벽함에 대해 다시 알리는 일. 집사들은 고양이 목조각을 통해 두 가지 이상의 목적을 실현하는 중이었다. 집사들의 주인이자 뮤즈인 고양이를 향한 인류의 사랑은 한동안, 아니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강한 예감이 공방 안을 가득 채웠다. 벽면에 가득한 일러스트 속 고양이가 아까부터 내리까는 표정으로 말하는 듯했다. 그걸 이제 알았니? 그 바로 옆 그림 속 문장이 가만이 흘렀다. “고양이는 언제나 옳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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