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해체 후 남은 핵무기 폐기 프로그램을 이끈 ‘넌-루거법’ 발의로 유명한 리처드 루거 전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 2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7세.
AP통신에 따르면 루거센터는 루거 전 의원이 이날 오전 버지니아주(州) 소재 병원에서 말초 신경에 대한 희귀 자가면역 장애인 CIDP(만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공화당 소속인 루거 전 의원은 1991년 ‘위협 감축 협력프로그램(CTR)’으로 알려진 넌-루거법을 민주당 샘 넌(80) 상원의원과 함께 발의했다. 이 법은 소련의 붕괴로 핵무기를 갖게 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의 비자발적 핵보유국의 핵무기와 화학무기, 운반체계 등을 폐기하기 위해 기술과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은 이 프로그램에 따라 4년 동안 총 16억달러 규모의 정부 예산을 들여 해당 국가들을 지원하고, 이들이 보유한 수천 기의 핵탄두와 미사일 등 핵전력을 러시아로 넘겨 폐기했다. 옛 소련의 생화학 무기 제거 역시 이 법에 따라 진행됐다. 핵 개발에 동원된 옛 소련 과학자 등을 대상으로 전직(轉職) 훈련과 직장 알선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이들이 가진 핵 관련 기술이 다른 나라나 테러단체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했다.
‘카자흐스탄 모델’로도 알려진 넌-루거법은 북핵 해법의 하나로도 주목받았다. 북한에 자금과 기술을 지원함으로써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를 폐기하는 한편 북한의 핵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재훈련과 재취업 문제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거와 넌 전 의원은 지난해 4월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넌-루거법이 북핵 해결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생전 루거 전 의원은 한반도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1990년대 초반 북핵 위기 이후 고비마다 온건 대화론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역설했다. 2002년 제네바 합의 파기 당시 북미간 직접대화 필요성을 부시 행정부에 주창한 의회 내 대표적 대화론자였다.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에는 한국을 방문했으며, 보좌관에게 북한 영변 핵시설을 방문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28일 성명을 통해 “루거 전 의원은 상원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를 이끈 지도자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차별 정책) 중단하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소련의 대량살상무기를 해체하기 위한 조약을 집행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일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홍윤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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