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런 직원들 “제주는 취직도 쉽지 않은데 큰 걱정”
“800억원대 손배소송 앞두고 인건비 부담 줄이기” 분석
29일 오전 서귀포시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 건물은 옅은 안개에 둘러싸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건물 주변에는 삼삼오오 모여있던 녹지병원 직원들도 어두운 표정으로 3일 전 병원측의 갑작스런 전 직원 해고 통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간신히 잡고 있던 병원 개원에 대한 희망의 끈도 사라지자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녹지병원 사업자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는 지난 26일 간호사 등 녹지병원 근로자 50여명에게 전달한 구샤팡 대표 명의의 편지를 통해 “병원사업을 부득이하게 접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병원사업 중단 의사를 밝혔다. 이어 “객관적인 여건상 회사가 병원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여러분들과 마냥 같이할 수 없기에 이 결정을 공지한다.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근로자대표를 선임하면 그 대표와 성실히 협의토록 하겠다”고 해고를 통보했다.
녹지제주는 근로자와 고용은 해지하지만 병원사업을 운영할 적임자가 나타나면 이들 근로자가 우선 채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직원들은 답답한 마음만 가득했다.
한 직원은 “해고와 관련해서 한마디도 없다가 갑작스런 회사의 통지에 당황스럽다. 가능성은 크지 않았지만 비영리병원 전환 등 개원 가능성을 기다렸는데 결국은 문을 닫게 됐다”며 “큰 기대를 품고 입사했는데 2년도 채 되지 않아 일자리를 잃게 됐다. 제주는 취직도 쉽지 않은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녹지제주는 2017년 8월 녹지병원 건물을 준공하고 제주도에 개설허가를 신청할 당시 의사 9명과 간호사 31명 등 134명의 인력을 채용했었다고 밝혔다. 개설허가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그만두고, 현재 50여명만 남아 있다. 이들 직원들은 근로자 대표자 선출과 요구사항 등을 정리해 회사측과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녹지병원 사업자인 녹지제주가 이처럼 사실상 병원사업에 대한 정리절차에 들어간 것은 제주도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직원 해고라는 강수를 둔 것은 더 이상 원만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판단과 함께 장시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소송기간까지 인건비 부담을 안고 고용을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녹지제주는 병원 건물 건립에 따른 비용과 인건비, 관리비 등 약 850억원의 비용을 투자한 것으로 밝히고 있어, 손배배상 소송 규모도 최소 800억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미래 가치 등을 감안하면 액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녹지제주측은 당장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제주지방법원에 도가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해 개설허가를 낸 것은 위법하다며 허가 조건을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행정소송 외에 현재까지 다른 소송은 제기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양측이 합의점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여서 거액의 소송전은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분석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녹지제주의 직원 해고 통보에 대해 “녹지측은 병원 개원 준비를 하지 않았고 실제 진행할 의사나 협의도 없었기에 직원 해고도 예상된 수순으로 생각한다”며 “영리병원 문제는 도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도와 녹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중앙정부간 4자간 협의체를 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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