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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기 전에 사과라도…” 일분일초가 급한 강제징용ㆍ위안부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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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기 전에 사과라도…” 일분일초가 급한 강제징용ㆍ위안부 피해자들

입력
2019.04.30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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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연된 정의, 시간과 싸우는 사람들] <2> 강제징용ㆍ위안부 피해자들 

 “75년전 고통만큼은 여전히 생생… 배상보다 중요한 건 일본의 사죄” 

 양승태 대법, 강제징용 판결 지연… 소송 참여 36명 중 19명이 사망 

‘지연된 정의’에 가장 오래 고통을 받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일분일초가 가장 아까운 이들이 바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및 위안부 피해자들이다. 강제징용ㆍ위안부 피해자들은 가장 나이가 적은 이들이 80대 후반, 많으면 100세를 훌쩍 넘어섰다. 일본 정부의 외면, 역대 한국 정부의 무관심, 사법부의 정치적 판결 탓에, 해방 74년이 지났지만 이들의 배상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피해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죽기 전 사과 받고 싶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기억 희미해져도 쓰린 고통은 생생하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한수(101) 할아버지가 징용 당시 자신이 쓴 일기장을 보여주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징용 때 겪었던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일기를 복기했다. 처음 쓴 일기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불에 타 없어졌고, 두 번째 일기는 6.25 전쟁 때 피난오면서 이북 집에 두고 왔다. 세 번째 일기는 몇 년 전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다시 쓴 뒤 영구 보존하기 위해 디지털화했다. 배우한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한수(101) 할아버지가 징용 당시 자신이 쓴 일기장을 보여주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징용 때 겪었던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일기를 복기했다. 처음 쓴 일기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면서 불에 타 없어졌고, 두 번째 일기는 6.25 전쟁 때 피난오면서 이북 집에 두고 왔다. 세 번째 일기는 몇 년 전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다시 쓴 뒤 영구 보존하기 위해 디지털화했다. 배우한 기자

올해 101세인 김한수 할아버지는 1944년 일제에 징집됐다. 공무원이 되면 징집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전매청에 들어갔지만, 도리어 동네에서 제일 먼저 끌려갔다. 기차와 배를 번갈아 타길 반복해 도착한 곳은 일본 나가사키 어느 공장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쇠를 굽히는 작업장에 배치됐고, 몇 개월 만에 겨우 일이 손에 익는가 싶었는데 쇳덩이가 엄지발가락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로 엄지발가락 뼈가 산산조각 나 발가락이 계란만하게 부었지만 치료 한 번 받지 못했다. 대신 동료가 덧대준 나무판자에 기대 절뚝거리며 숙소에서 공장까지 10리길을 오가야 했다.

14개월 생활 동안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배고픔이었다.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기름을 다 짜고 남은 콩 찌꺼기로만 삼시세끼를 때우려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날엔 버려진 고구마나 무를 몰래 주워먹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는 게 목표였어요. 고향 돌아가 부모님이나 뵙고 죽었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었죠.” 김 할아버지는 75년 전 일을 그렇게 떠올렸다.

해방과 함께 돌아온 김 할아버지는 고국에 발을 내딛은지 74년 만인 지난 달 과거 자신에게 강제노역을 시킨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손배해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후손들은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것”이라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이렇게 직접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소송에 참여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매년 기억이 희미해져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렸는데 이상하게도 그 때의 고통만큼은 여전히 생생해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며 “배상보다 중요한 건 일본이 자신들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양승태 대법원 시기에 지연된 배상판결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99)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배상 확정 판결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99)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배상 확정 판결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해방 73년만에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014년 사망한 여운택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2005년 2월 첫 소송을 낸 피해자 4명 중 3명이 숨진 뒤였다. 홀로 남은 이춘식(99) 할아버지는 “너이가(네 명이) 재판 같이 했는데, 다 돌아가시고 혼자 허니께 눈물이 난다”며 어린아이처럼 통곡했다. 2000년 5월에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강제징용 고(故) 박창환 할아버지 등 5명도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을 받았지만, 소송이 18년이나 걸린 탓에 피해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사실 소송은 일찍 마무리될 수 있었다. 대법원은 2012년에 이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1965년 양국 정부가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듬해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대법원이 이 판결을 확정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차일피일 결론을 미루며 재판을 다시 뒤집는(원고패소) 방안을 구상했다.

당시 대법원은 강제징용 소송을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 개선 및 대법원 숙원 사업에 활용하려 했다.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이다. 판사들의 해외공관 파견에서 외교부의 협조를 얻기 위해 강제징용 재판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했고,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전범기업 대리인 측을 만나 재판지연 및 전원합의체 회부 계획을 공유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뻔한 결론을 내지 않고 딴생각을 품는 사이 강제징용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36명 중 19명(제소직전 사망 1명 포함)이 소송 결과를 보지 못한 채 사망했다.

 ◇위안부 관련 재판은 이제부터 시작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 운구행렬이 2월 1일 서울 광화문 일대를 지나가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매년 줄어 올해 4월 2일 기준 21명밖에 남지 않았다. 심현철 기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 운구행렬이 2월 1일 서울 광화문 일대를 지나가고 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매년 줄어 올해 4월 2일 기준 21명밖에 남지 않았다. 심현철 기자

위안부 피해자들의 재판은 강제징용보다도 진도가 늦다. 이들 역시 비교적 일찍 소송을 시작했지만 일본ㆍ한국 양쪽에서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피해자들은 1992년 12월부터 꾸준히 일본 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원고의 상고를 기각해 패소가 확정됐다.

이후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피해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하자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92) 할머니 등 11명과 숨진 6명의 유가족들은 이듬해 12월 한국 법원을 통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송은 3년째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조약에 따라 ‘사법공조’ 대상인 일본 법원에 소장이 전달돼야 한국 법원에서 민사소송이 시작될 수 있는데, 일본 측은 주권침해를 이유로 아예 소장을 받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 11명 중 5명이 숨졌다.

더 이상 일본의 응답을 기다리기 어렵다 판단한 법원은 올해 3월 일본에 손해배상 소송 소장과 소송안내 번역본을 공시송달(주소를 알 수 없거나 서류 접수 등을 거부할 때 소송 서류 등을 법원 게시판에 게시하면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했다. 민사소송법에 따라 두 달 뒤부터 효력을 발휘하며, 이 사건의 경우 다음달 9일 0시가 그 기점이다. 일본이 이날까지 응답하지 않으면 한국 법원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재판을 시작할 수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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