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펀딩ㆍ유튜브 후원 등 랜선 통해 집사 간접 체험 창구 늘어 
 ‘고양이 없는 고양이 축제’ 펀딩에 258만원 모이기도 
고양이. 게티이미지뱅크

“고양이에 돈을 쓰는 이유요? 그냥요. 귀엽잖아요.”

기분 좋은 봄바람이 공업지대 골목 사이를 휘젓고 다니던 지난달 17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 2동 일대 ‘선유마을’의 상점 곳곳에 ‘고양이축제’에 초대한다는 포스터가 붙었다. 고양이 잡화점 ‘선유도고양이’에서 직장인 박현희(30)씨는 ‘왜 고양이에 돈을 기꺼이 쓰느냐’는 질문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마치 그건 고양이가 무척 귀여워서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는 불가항력의 마음을 정녕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는 온통 고양이 무늬 티셔츠와 액세서리 차림이었다.

각종 고양이 굿즈(goodsㆍ상품) 앞에서 ‘지름신’의 유혹을 겨우 물리친 그는, 이내 고양이 포토존에 다가가 집에서 일부러 챙겨온 고양이 형상의 인형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필경 고양이 여러 마리를 키우다 못해, 길냥이(길고양이)마저 눈에 아른거려 밥을 챙겨주는 캣맘(cat mom)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실 그는 온라인 상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랜선집사(인터넷으로 고양이를 접하는 사람)다. 그저 고양이라는 생명체에 매력을 느껴, 고양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고 한다. 박씨는 “가족의 반대로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고 랜선(인터넷)으로 남의 집 고양이를 보거나, 이렇게 고양이 축제에 온다”라며 “주어진 상황에서 고양이를 예뻐하는 나만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4월 17일 선유마을 고양이 축제. 이혜미 기자
 ◇ ‘랜선 집사’들의 천국, 고양이 없는 고양이축제 

올해 처음 ‘선유마을 고양이축제’가 개최되는 데에도 수많은 랜선집사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축제는 올 초부터 선유도 인근 쇠락한 공단지역에 터를 잡은 젊은 예술가와 상인들이 어떻게 하면 마을을 살리고, 사람을 끌어올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다. 동네의 유래에 대해 조사하던 중, 옛날 이 지역이 봉긋 솟은 봉우리 때문에 ‘괭이산(고양이산)’이라 불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외부의 재정 지원을 일절 받지 않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축제였기에, 홍보와 운영비는 3월 21일부터 지난달 7일까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했다. ‘누가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에 쉽게 돈을 내겠느냐’는 우려와 달리, 랜선집사들의 저력으로 당초 목표 금액의 두 배를 훌쩍 넘긴 258만원이 모였다. 축제 기획에 참여한 백병근(45) 선유도고양이 대표는 “일본의 기치조지 지역에서는 10년 가까이 고양이를 테마로 한 지역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이를 벤치마킹해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고 마을을 살리고 싶다는 데에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다”며 “인적 드문 마을에 고양이가 훈훈한 기운을 더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축제가 전면에 고양이를 내세운 것과 달리 이날 골목에서 ‘야옹’ 소리 한번 듣기 힘든 것은, 사실 이 축제가 ‘고양이 없는 고양이 축제’이기 때문이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개와 달리 외출과 산책 등 야외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 때문에 축제를 찾은 이들은 고양이 배지를 가슴팍에 달아 자신이 ‘묘권(고양이의 권리) 증진’에 앞장서는 입장임을 분명히 하거나, 고양이 스카프를 매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양이를 ‘지닌 채’ 골목을 누볐다. 간혹 물건을 쓸어 담기 위해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큰 손도 목격됐다. 축제에서 만난 6년 경력의 집사(반려묘를 키우는 사람) 김민성(24)씨는 “오늘 15만원을 소비하는 게 목표였다. 고작 두 군데 가게에 들렀을 뿐인데 벌써 5만원을 썼다”며 난감해했다.

4월 17일 선유마을 고양이 축제. 이혜미 기자

고양이는 없지만 축제는 그야말로 ‘씹고 뜯고 맛보는’ 수준으로 고양이 그 자체를 즐긴다. 이 지역 22개 상점에 숨어있는 고양이를 발견하면 스탬프를 찍을 수 있다. 도장을 찍기 위해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지갑을 연다. 카페에 가면 초콜릿 음료 위에 고양이 모양 마시멜로가 올려져 있고, 실내 클라이밍 센터에서는 고양이 모양의 홀드(암벽을 타기 위한 손잡이)를 잡고 벽을 탄다. 네일아트 가게에서는 고양이를 손톱에 그려주고, 일본 라면 식당에서는 고양이와 라면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음료수를 증정하는 등 제각각 고양이를 즐기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이외에도 축제에서는 △고양이 일일 클래스 및 체험 △고양이 플리마켓 △고양이 전시 △고양이 강좌 등 일정에 맞춰 고양이에 대해 총망라한 행사들이 진행됐다.

남자친구의 일방적인 ‘고양이 앓이’를 보다 못한 이은(33)씨는 김재환(25)씨의 손을 붙잡고 축제를 찾았다. 김씨는 동네를 배회하던 길냥이와 마주친 순간, 부지불식간에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배곯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을 시작으로, 그의 상사병은 커져만 갔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경제 여건이나 책임감 등으로 선뜻 결정을 내리진 못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에서 인기를 얻은 고양이에게 연신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씨는 “14년 동안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예전에는 요물 취급을 받았지만, 이렇게 축제까지 생긴 것을 보면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아진 것 같다”며 “랜선집사인 남자친구는 모니터를 통해서라도 고양이를 한번 쓰다듬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국제 캣산업 박람회'의 한 부스에서 캣타워를 판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고양이 애호가의 저력에 몸집불리는 ‘캣코노미’ 

2017년 4월 처음 개최된 국제캣산업박람회는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길렀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가 빗발치는 항의에 문구를 일부 수정해야 했다. 일견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집사들의 고양이 사랑을 잘 표현한 듯도 한데, 문제가 된 부분은 ‘길렀다’라는 서술어였다. 고양이 집사들에게 길렀다는 표현은 어불성설, 고양이는 모시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국제캣산업박람회는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모셨다’는 문구로 올 초 3회까지 성황리에 개최됐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에 ‘펫코노미(pet과 economy를 합쳐 반려동물 산업을 일컫는 말)’의 등장은 이제 구문이 된 지 오래. 고양이라면 기꺼이 ‘지갑으로 모시는’ 집사들의 저력 덕에 기존 반려견 시장을 넘볼 정도로 반려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해, 가히 ‘캣코노미(catconomyㆍ반려묘 산업)’이라 불러도 될 수준이다. 그 배경에는 ‘조공을 바친다’는 표현을 쓰면서 고양이를 위해 돈을 쓰는 집사, 랜선집사, 캣맘ㆍ캣대디 등이 있다.

지난달 26일 시장 조사 기업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올해 한국 펫케어 시장 예상 규모는 약 1조8,182억원 상당으로 집계됐다. 이는 8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성장한 것인데, 성장의 중심에는 ‘고양이 집사’가 있다고 분석했다. 2015년의 78억 원 규모였던 고양이 간식 시장은 지난해 523억 원으로 6.7배나 성장했다. 지난해 기준 고양이 펫푸드 시장은 3,000억원 규모이나, 2024년에는 4,500억원 규모로 1.5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고서는 예상했다.

고양이를 전문으로 하는 박람회 등장은 캣코노미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반려동물 박람회에서 강아지 용품에 밀려 간신히 좁은 자리를 차지했던 고양이는, 2014년 궁디팡팡 캣페스타(당시 궁디팡팡 마켓)를 시작으로 국제캣산업박람회, 서울캣쇼 등이 가세하며 전문 박람회로까지 성장했다. 간식, 장난감, 사료 등 고양이 용품을 한데 모아 전시, 판매하는 박람회가 성행하면서 관련 용품들도 다양화, 고급화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고양이 종합검진 코스’와 ‘고양이 한약’을 판매하는 동물병원이 참여하고, 고가에 판매되는 자동화 로봇 기능을 탑재한 장난감과 고양이 화장실 등이 불티나게 매진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주말 부산에서 열린 박람회서 자신들의 반려묘를 위해 20만원 가까이 썼다는 최지혜(32), 최지원(30)씨는 “고양이를 볼 때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항상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환경에서 놀게 하고 싶은데, 말을 못하니 이것저것 사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사랑이라도 짝사랑이면 더욱 애뜻하고 간절할 터. 고양이에게 쏟는 정성은 랜선 집사들도 못지 않다. 올 초, 한 고양이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들은 자발적으로 후원계좌를 열어달라고 요청해 화제가 됐다. 길에서 데려온 아픈 고양이 22마리와의 일상을 영상으로 올리는 구독자 11만여명이 해당 채널에 “병원비 등을 위해 우리가 돈을 입금할 테니 계좌번호만 알려달라”는 랜선집사들의 신개념 후원 요청이 쏟아졌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구독자들은 차선으로 ‘광고 끝까지 보기’를 자발적으로 실천해 광고 수익이라도 돌아갈 수 있게 애쓰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18만명의 팔로워를 이끌며, 그 어떤 TV스타보다 유명해진 고양이 히끄의 집사가 펴낸 책 ‘히끄네 집(야옹서가 출판)’은 최근 7쇄(1만7,000부)를 찍었다. 책은 일본의 출판사와 판권 수출 계약을 맺어 올해 일본어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한편, 고양이 관련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다 보니 ‘캣택스(Cat tax)’가 부작용으로 나타났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고양이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모습에 일부 업체들이 고양이 관련 물품을 지나치게 비싸게 판다는 의미인데, 같은 상품인데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현상인 ‘핑크택스(Pink tax)’에서 파생한 신조어다. ‘고양이의 본능에 특화된’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평범한 물그릇이 4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팔리는 등, 유독 고양이 용품이 비싸다는 인식에 고양이 집사들을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고양이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네티즌은 “사람이 쓰는 것과 똑같은 제품인데 최소한 수배에서 수십배까지 가격 차이가 나고, 고양이 전용이라는 말만 붙으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진다”며 “고양이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용한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고 합리적 소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바쁘고 관계에 지친 현대인이 도도하고 독립적인 성향에, 개에 비해 손이 덜 가는 고양이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끌림”이라며 “다만 생명을 키우는 데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기에 랜선집사나 캣맘 등 고양이를 좋아하는 다양한 방식이 생겨난 것”이라 분석했다. 또 그는 “귀여운 고양이에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으나, 이를 악용하는 상술에 대해서는 냉정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프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