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새벽까지 영사기 돌려도 밀려드는 관객수요 감당 못해
‘입소문=스포일러’ 극도로 경계, 관람전까지 SNS 끊고 댓글 피해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열풍이 한국 극장가를 강타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서울 강남구 역삼동 CGV 강남점 29일 상영 시간표에 전례 없던 ‘기이한 일정’이 공지됐다. ‘28시 40분~31시 51분’. 오전 4시 40분에 시작해 오전 7시 51분에 끝난다는 뜻이다. 28시 00분(오전 4시), 27시 35분(오전 3시 35분), 27시 05분(오전 3시 5분), 26시 25분(오전 2시 25분)에 시작하는 상영관도 있다. 말 그대로 새벽 별 보며 영화 보기다. ‘하루 24시간’ 개념마저 무너뜨린 이 시간표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4)으로 도배돼 있다. 예매 개시와 동시에 매진되는 저녁 시간대를 포기하고 아예 새벽에 나와 아침까지 영화를 본 뒤 곧바로 회사에 출근하는 관객들을 배려한 시간대다. 심야 시간대가 상대적으로 시야 좋은 좌석을 구할 확률도 높다.

조조 상영 시간도 앞당겨지고 있다. 오전 7시는 물론이고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해 오전 9시 31분에 끝나는 일정도 등장했다. 일부 극장에선 마지막 심야 상영과 첫 조조 상영 시간이 겹치기도 한다. 이렇게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온 종일 영사기를 돌려도 극장들은 밀려드는 관객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어벤져스4’는 28일까지 무려 631만5,593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600만 돌파에 불과 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벤져스4’ 열풍은 극장가 관람 문화까지 바꾸고 있다. 모든 관객이 ‘어벤져스4’로 대동단결하는 모양새다. ‘마블의 민족’ ‘마블의 나라’ ‘마블의 노예’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관람객 평가와 평론가 별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입소문 등 기존에 영화 흥행을 좌우하던 요소들이 ‘어벤져스4’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입소문을 스포일러로 여겨 극도로 경계한다.

관객들은 영화 보기 전까지 SNS 활동을 끊고 관련 기사와 댓글도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극장 화장실이나 극장 주변 식당은 주변인의 대화를 통해 스포일러를 접할 위험이 높아 특히 조심해야 할 곳으로 여겨진다. 온라인에선 식당 주인이 붙여 놓은 스포일러 금지 호소문 사진이 화제가 되고, 중간고사 시험지에 스포일러를 적어 놓은 학생을 찾는다는 대학 조교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영화 관람 후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에 대해 듣지 않으려는 사람 사이에 신경전도 심심찮게 펼쳐진다. 해외에서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스포일러 경고 글을 게재한 영국 지하철역 사진, 학생들에게 스포일러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교사의 대자보 등이 네티즌의 웃음을 자아냈다. 홍콩에선 스포일러 때문에 폭행 사태가 벌어졌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28일 서울 시내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모니터에 '어벤져스: 엔드게임' 상영 현황이 나타나있다. 연합뉴스

‘어벤져스4’를 봤거나 볼 예정인 관객들 사이에선 “어차피 봐야 할 영화라면 최대한 빨리 보자” “역시 조조 관람이 진리다”라는 ‘관람 수칙’이 공유되고 있다. 24일 개봉 첫 날부터 매진이 속출했다. 낮 시간대보다 조조 상영관에 더 쏠렸다. 회사에 휴가를 내거나 수업을 ‘째고’ 온 20~30대 관객들이었다. 이날 CGV를 찾은 관객 중 20대가 42.4%(CGV리서치센터)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31.2%로 그 다음이었다. 개봉 당일 재관람 비율은 2.2%로, 같은 기간 평균 0.9%보다 월등히 높았다. 24일 서울 용산구 CGV 아이맥스관 조조 상영을 찾은 직장인 김모(34)씨는 “수시로 ‘광클릭’을 해서 취소된 예매 좌석 한 자리를 간신히 구했다”며 “오전 반차 휴가를 내고 극장에 왔다”고 말했다. IT업계에 일하는 박모(36)씨도 “하루라도 빨리 스포일러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예매 전쟁을 치렀다”고 했다.

일반관에 비해 가격대가 2~3배 이상 높은 특별관도 인기다. 3만5,000원짜리 CGV 골드클래스관과 4만5,000원짜리 템퍼시네마관조차 좌석을 구하기 어렵다. CGV 관계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영화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최적의 관람 환경에서 보려는 관객들과 기업 단체 관람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어벤져스’ 시리즈 흥행 비교. 그래픽=강준구 기자

관객들의 열기는 박스오피스를 뒤흔들었다. 개봉 당일 134만명을 불러모으며 개봉일 신기록을 썼고, 27일에는 하루 동안 148만9,083명을 동원해 역대 최다 일일 관객수를 갈아치웠다. 유례 없는 ‘광속 흥행’이다. 스크린 독과점도 역대급이다. 일일 관객수 신기록을 작성한 27일에는 총 상영횟수가 1만3,276회로 상영점유율이 79.8%에 달했다. 전국 극장들이 하루 종일 ‘어벤져스4’만 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개봉일에는 영화 상영으로 발생한 전국 극장의 전체 좌석 중 85%가 ‘어벤져스4’에 배정됐고, 박스오피스 사상 처음으로 상영점유율 80%를 넘겼다(80.5%). 반독과점 영화인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스크린수를 제한해도 ‘어벤져스4’처럼 많은 관객이 찾는 대형 상업 영화는 장기 상영을 하면서 목표 흥행 수치를 달성할 수 있다”며 “다른 영화들에도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극장들은 “‘어벤져스4’에 쏠리는 관객 수요를 무시하기 어렵다”며 “인위적인 스크린수 제한이 장기적으로 극장 산업에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고려돼야 한다”고 맞섰다. 관객들 사이에서도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지만, 워낙 흥행 열풍이 거세다 보니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어벤져스4’는 2008년 시작된 마블 영화 10년 역사를 집대성한 완결판이다. 영화 관람 전후로 전작 21편을 다시 찾아 보는 ‘복습’ 열기도 뜨겁다. 한 포털사이트의 경우 27일 영화 VOD 다운로드 순위 20위권에 마블 영화가 15편이나 포진해 있다. 1위는 ‘어벤져스4’를 이해하는 데 필수인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어벤져스3ㆍ2018)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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