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사실상 한국의 후쿠시마(福島)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를 인정한 WTO 상소기구 판정에 항의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자국의 역전 패소로 끝난 WTO 판정과 관련해, WTO 상소기구 위원수를 거론하며 흠집 내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산케이(産經)신문은 2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WTO 개혁과 관련해 협력해 나가는 방침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26일 한국, 미국, 중국 등 164개 회원국ㆍ지역이 참여한 WTO 비공식회의에서 미국 대표가 “일본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한국의 조치가 WTO협정에 비정합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상소기구가 실질적인 이유 없이 결정을 뒤집은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주제네바 국제기구 일본 정부대표는 “피해지역의 재건에 찬물을 끼얹었다. 매우 유감이다”라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산케이신문은 “일본의 WTO에 대한 항의에 미국이 지지했다”는 제목을 달았다.
아베 총리는 미국 방문에 앞서 들른 벨기에에서도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만나 WTO 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회담 이후 “주요 20개국(G20)이 자유무역 추진과 WTO 개혁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져야 한다”면서 “EU와 연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후 공동성명에서도 “WTO 통상위원회의 감시기능을 강화하고 상소기구가 본래 기능을 확보하도록 계속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은 자국에 패소 판정을 내린 WTO 상소기구 위원 정원이 7명임에도 현재 심리ㆍ판정을 위한 최소 인원인 3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 현재 4명이 공석인 이유는 미국이 위원 임명과 재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으로, 심리ㆍ판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니다. WTO 개혁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국가들과 무역 마찰을 일으키며 WTO 무용론을 제기한 것에 대항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러한 분위기를 활용, WTO 개혁을 주장함으로써 마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규제에 대한 WTO 판정이 잘못됐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 23일 도쿄에서 열린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과김용길 한국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 간 양자협의에서 한국의 후쿠시마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완화 및 폐기를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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