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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전원합의체서 ‘유신정권 긴급조치 배상’ 인정될까

입력
2019.04.29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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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정의, 시간과 싸우는 사람들] <1> 유신정권 긴급조치 피해자들

긴급조치 위반 피해자 1100여명… 양승태 대법 판례로 배상 못 받아

대법관 13명 중 8명 문 정부서 임명, 국가배상 책임 인정 가능성 보여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신상순 선임기자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신상순 선임기자

과거 유신정권에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해자 수는 1,100여명 정도다. 영장 없이 체포되는 등 명시적인 불이익을 입었으나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피해자 규모는 훨씬 크다. 이들 중 일부만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 국가배상을 청구했지만, 2015년 양승태 대법원이 “긴급조치는 위법이되 이로 인한 국가 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이후, 4년간 긴급조치에 따른 국가 배상의 길은 사실상 막혀 있다.

그러나 최근 하급심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판례를 거부하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등, 이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이 양승태 대법원 판례를 뒤집고, 최종적으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할 지에 법조계의 이목이 쏠린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 임정엽)는 긴급조치 철회 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김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 구체적인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대통령이 긴급조치를 발령한 것이 헌법을 위반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고의에 의한 위법행위"라면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는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가 위헌이긴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결정한 뒤 기존 대법원 판결에 반기를 든 첫 하급심 판결이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은 “긴급조치 발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일 뿐이어서, 대통령은 국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개개인의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지는 않는다”며 배상 책임을 부정했다.

이 사건의 최종 판단은 결국 대법원이 다시 내려야 한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뒤집으려면 전원합의체를 통해야만 한다. 전원합의체는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되며 출석인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을 내리는데, 13명 중 8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는 점에서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은 있다.

또 다른 해법은 특별법을 통한 일괄적 문제 해결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2015년 판결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재판거래’로 인해 정치적으로 왜곡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마당에, 이미 패소 판결을 받거나 제때 배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을 아예 특별법으로 일괄 구제하자는 주장이다. 지난해 8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농단 관련 사건의 재심을 가능하도록 하는 ‘사법농단 피해자 구제법’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대법관들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이를 재심 사유로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법원이 관련자에 대한 유죄 판결을 재심 사유라 판단할 지도 미지수고, 인정된다 해도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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