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진전 불구 비핵화는 제자리
‘단계’ ‘일괄’ 北美 방법론에 이견
정부, 적극 중재로 동력 회복해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등 북핵 협상의 새 물꼬를 텄던 남북 판문점선언이 27일로 1주년을 맞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대화 무드를 이어받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일궈낸 이 선언으로 일촉즉발의 위기감까지 감돌았던 남북 관계는 다양한 협력 관계로 일변했다.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설치됐고, 대북 제재에 막혀 진척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ㆍ도로 연결, 이산가족 상봉 등 협력 사업이 논의됐다.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철거, 적대금지 구역 훈련 중지 등 군사적 긴장 완화 성과는 두드러진다.
그러나 남북이 판문점선언을 통해 약속하고 그것을 이어받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거듭 확인했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핵심 합의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발사 실험이 1년 넘게 중단된 상태고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같은 북한의 선제 조치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북미가 목표로 하는 북핵 전면 폐기를 위한 협상은 비핵화 목표에 공감한다는 수사만 반복될 뿐 사실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방법론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단계적 주고받기를 원한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전체 핵무기 처리의 청사진을 그리는 빅딜을 고집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합의 무산으로 이런 갈등 구도는 더 선명해졌다. 이후 북미 모두 협상을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 특히 북한이 최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라며 부쩍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북미 협상은 정체인 반면 주변 당사국 간 외교는 활발해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북러 정상회담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러 정상회담이 베이징에서 잇따라 열렸다. 아베 일본 총리도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안보 현안 등을 논의한다. 북러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미국 측에 자신의 입장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미 모두에 불편한 감정이 없지 않지만 북한의 협상 의지는 식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남북관계가 북미 협상의 상황과 과정에 종속된 것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따라만 가는 변수는 아니다. 우리 정부가 북미 비핵화 협상의 토대를 마련하는 중재ㆍ촉진의 역할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것을 1년 전 판문점 선언이 증명한다. 비록 북한이 냉담한 반응을 보일지라도 끈질긴 설득으로 조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다시 북핵 협상의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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