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구체적 계획 없다… 통계조사 방법론에도 의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부터 반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반정부 집회인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해 25일(현지시간) 추가 대응책을 내놨다. 소득세 대폭 인하, 엘리트 양성기관 폐지 등이 주된 골자다. 일부 이슈에 대한 국민의 직접민주주의적 참여 확대, 지방에 대한 권한 이양 등의 방안도 담겼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유류세 인상 계획에 반대하며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가 점점 거세지자 작년 말 이를 철회한 것은 물론, 최저임금 인상 등을 민심 수습책으로 내놓은 바 있다. 당시 그는 “노란 조끼 시위에서 나온 민중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한 뒤, 지난 1월 15일부터 ‘국민 대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 왔는데 그 결과물을 이번에 발표한 것이다.
AFP통신과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대통령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산층에 대한 ‘유의미한’ 감세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 2년 동안의 개혁은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행보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이번 회견은 당초 지난 15일로 잡혀 있었지만, 당일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이날로 미뤄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내놓은 약속은 소득세 인하다. 그는 “소득세를 큰 폭으로 내려 일하는 사람들의 세금을 삭감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산층과 서민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며 유류세 인상 등에 저항했던 시위 참여자들로선 피부에 와 닿을 만한 대책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감세 조치로 약 50억유로(약 6조4,600억원) 규모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단서를 달았다. 공공지출을 축소하고 근로시간 확대를 통해 부족한 재원을 충당할 예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프랑스 엘리트주의 교육의 상징으로 꼽히는 국립행정학교(ENA)의 폐교도 입에 올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무엇보다 ENA를 폐지해야 한다”며 “다른 기관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일한 구조를 유지하면 그 특성이 남게 된다”면서 개혁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후 ‘관료 엘리트 육성’을 목표로 설립된 ENA는 그간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프랑스 정ㆍ재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권력 자본의 과도한 집중’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프랑스 역사상 네 번째 ENA 출신 대통령이다. 불평등에 저항하는 민중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모교 폐지’라는 초강수를 던진 셈이다.
이 밖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까지 국립병원과 학교의 폐쇄는 없을 것이며, 중앙정부 공무원 감원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혼 수당에 대한 보장 확대는 물론, 노령 연금도 현행 최저 637유로(약 82만4,000원)에서 1,000유로(약 129만3,500원)까지 증액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산층과 서민을 끌어안겠다는 행보로 풀이된다. 유럽 내 자유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의 적용 범위도 축소할 계획이다. 최근 유럽 내 큰 문제로 대두된 이민자들에 대한 대책 차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취임 후 노동시장 유연화, 부유세 축소 등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쳐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날 회견에서 그는 “지난 2년간 우리가 잘못된 길을 걸어 왔는가? 난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한다”면서 기존의 개혁 방향만큼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 아울러 “노란 조끼 시위가 처음 시작과 다르게 일부 변질됐다”고 지적한 뒤, 시위에서 나타나는 증오 등에 대해선 “모든 힘을 다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무엇보다 (프랑스 사회의) 공공질서가 회복되는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르몽드는 이번 발표에 대해 “몇몇 확실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꼬집고 나섰다. 우선 프랑스 국민들의 노동시간이 유럽 기타 국가에 비해 짧아 ‘노동 시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발표에 대해 “인용한 통계의 조사 방법론에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는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평균 노동시간이 비슷하다는 뜻이다. ‘탈(脫)중앙집권화를 추진하겠다’는 행정개혁 방침에 대해서도 르몽드는 “구체적 계획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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