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모ㆍ서주원의 ‘묘미(MYOMI)’
‘박광희 선생의 김치, 이금숙 선생의 참기름, 이영숙 선생의 무화과 식초.’
메뉴를 받아 펼치니 17가지 재료를 만든 사람의 이름과 원산지가 빼곡히 적혀 있다. 멍게 밥, 문어수란 채국, 도미떡국 같은 요리는 어떤 모습일까, 프랜치나 이탤리언이 아닌 한식 파인다이닝은 어떻게 구성될까. 궁금증이 커지는 사이 첫 요리가 눈 앞에 놓인다. 바로 육포 샌드위치. 단단한 재질의 육포를 겹쳐 놓은 형태를 떠올렸지만, 얇은 비스킷 크기의 음식이다. 지방이 많은 살치살을 얇게 잘라 이틀 간 말려 바삭하고 고소한 질감의 육포를 만들었단다. 뚜껑이 있는 플레이트에 드라이 아이스를 채워 음식을 내오는 방식은 눈을 즐겁게 한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학동에 오픈한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묘미(MYOMI)’ 이야기다. 섬세한 요리로 정평이 나 있는 장진모 셰프와 카레이서 서주원 대표가 만나 탄생시킨 레스토랑이다. 17일 낮 묘미에서 장 셰프와 서 대표를 만났다.
묘미는 2년 간 요리계를 떠났던 장 셰프의 재개 무대가 된 덕에 오픈 초기부터 눈길을 끌었다. 장 셰프는 서울 한남동에서 2014년부터 2년 간 ‘앤드 다이닝’을 이끌며 실험적인 요리를 선보이다가 2016년 돌연 요리를 멈추고 여행을 시작했다. 국내 곳곳을 돌며 한식 장인들을 만나고, 맛을 보고, 레시피 개발에 몰두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요리 곳곳에는 장 셰프의 오랜 고민이 묻어난다. 런치를 기준으로 ‘육포 샌드위치, 양지수육, 메밀묵, 호박나물, 문어수란채국, 도미떡국, 멍게밥, 돼지삼겹살, 베린’이 나오는데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 이름이지만 실제 모습은 전부 예상 밖이다. 부스러지는 식감의 메밀묵은 김과 갓김치, 향나물과 함께 곁들어져 초콜릿 덩어리처럼 플레이팅 됐다. 호박 나물 위엔 캐비어가, 문어수란채국엔 잣 국물이, 멍게밥엔 멍게 젓갈과 고추장 오일 등이 들어있다. 서 대표는 “음식 재료로 공산품을 거의 쓰지 않고 장인들의 손을 빌리고 있다”며 “들기름, 참기름은 직접 깨 밭을 사 재배도 해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요리 뒤에 숨겨진 스토리도 흥미롭다. 도미떡국은 전남 지역에서 주로 먹는 대구떡국에서 모티브를 딴 것. 문어수란채국은 경남 밀양 손씨 종가 등에서 내려오는 음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장 셰프는 “전국 곳곳에 숨겨진 보석들이 워낙 많아 이를 기반으로 세계인 입맛에 맞는 한식을 선보이고 싶었다”며 “익숙하지만 특별한 요리에서 오는 즐거움을 주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전통술 대신 내추럴와인과 한식을 페어링하는 것도 특징이다. 메인 요리 직전까지는 동치미 같은 산미가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이, 밥과 고기가 나올 때쯤엔 묵직한 바디감이 돋보이는 레드 와인이 곁들여지는 식이다. 네츄럴 와인 특유의 콤콤한 향이 한식의 장맛, 기름 맛과 어우러지면서 깊은 풍미를 만들어 낸다.
서 대표 역시 셰프 못지 않게 요리 연구에 깊게 빠져 있다. 프로 카레이서이자 방송 프로그램 ‘하트시그널 시즌 1’ 출연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요새는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을 돌며 레시피를 궁리하는 ‘요리 연구가’에 가깝단다. “한식의 세계화라고 해서 너무 서양식으로 맛과 형태를 바꾸고 싶지 않았어요.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지만, 식감이나 모양에서 변주를 주는 방식으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려 해요.” 서 대표의 철학이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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