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화물선을 타고 로테르담에 갈 기회가 있었다. 로테르담은 유럽 최대 무역항이다.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접했다. 화물선에서 내린 컨테이너들은 전국 각지로 보내기 위해 하역장에서 재배치를 하게 되는데, 그 역할을 전부 다 로봇 자동차들이 맡고 있었다. 함부르크나 사우스햄튼 등 다른 항구에서는 사람이 운전하는 특수차량이 하는 일이었다.
궁금했다. 부두 노동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노동조합 중에서도 항만노조는 강성인 편이라는데, 과연 로봇들에 순순히 일자리를 내어 준 걸까? 혹시 로봇 자동차들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없었는지 기사를 검색해 봐도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화물선에서 컨테이너를 내리는 크레인조차 무인으로 조종되고 있었다. 사람이 앉던 조종석은 남아 있지만 텅 비어 있었고 앞쪽에 달린 센서 카메라만이 바쁘게 반짝거리며 움직였다.
항구 전체를 둘러보다 보니 의문이 풀렸다. 로테르담항은 매우 넓어서 하역장이 수없이 많은데, 내가 탄 배가 정박한 곳은 가장 바깥쪽이었다. 바로 옆은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나대지일 정도였다. 즉 이 하역장은 처음에 조성할 때부터 로봇 자동차만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 디자인되었던 것이다. 항구 안쪽으로 몇 킬로미터를 더 들어가면 그곳에는 여전히 인간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을 터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면 그 자리는 어떻게 될까. 더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로테르담항의 숱하게 많은 하역장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로봇 전용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물론 로테르담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모든 항구들도. 그 과정은 아무리 느려도 결국은 21세기 중반이면 닥칠 세상이다.
로테르담항의 로봇 자동차들은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일하는 것보다 효율은 월등히 높을 것이다. 그런 사실은 하역장 바닥이 선명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바로 로봇 자동차들이 그려 놓은 타이어의 궤적들. 마치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평행하게 줄지어진 직선들에다 그 끝에 좌회전, 혹은 우회전한 자국 또한 똑같은 각도와 반지름을 그리며 겹쳐져 있었다. 인간 운전자들이라면 절대로 남길 수 없는 일정한 패턴이었다. 이러한 AI의 완벽한 질서에 과연 인간들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알파고는 특정 분야에서 AI가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 뒤로 AI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위협과 공포가 전에 없이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사회가 지닌 보수적 관성은 생각보다 크다. 법적, 제도적 대비를 할 시간도 필요하다. AI 로봇이 인간 노동자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준다면 그에 대한 과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줄어드는 일자리만큼 실직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 복지는? 요즘 많이 논의되는 ‘기본소득 지급’ 이상의 대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온 개념이 ‘적응형 자동화’라는 AI의 개발 방향이다.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혼자서 하던 일에 AI를 붙여줌으로써 시너지를 내어 더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간과 AI의 협업이라는 방향은 인간이나 AI나 서로에게 적응하는 시간을 벌어주어 궁극적으로 사회 기간 시스템의 대부분을 AI가 담당하게 되는 미래까지 최대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완충기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21세기에 태어나 자란 인류가 사회의 주류 계층이 되어 경제 활동을 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인류 사회는 도나 해러웨이가 예견한 것처럼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라는 거대한 사이보그 문명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만, 이것은 또 다른 논의의 시작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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