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김정은보다 정상회담장 30분 먼저 도착
김정은 26일 北 유학생 만나고 시내 시찰 나설 듯
25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서 첫 만남을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로 호의를 보이면서도 회담 자체는 진지한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 두 정상은 총 5시간가량 회담과 만찬, 연회 등을 함께 하며 친선 관계를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 35분 전용차량을 타고 회담장인 루스키섬 극동연방대 S동(스포츠센터) 건물에 도착했다. 과거 양자 정상회담에서 최대 4시간 15분씩이나 늦게 도착할 정도로 ‘지각왕’으로 악명 높은 푸틴 대통령이지만 당초 러시아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도착 시간(오후 1~2시)에 무사히 당도해 김 위원장에게 성의를 보였다. 회담장에서 약 180m 떨어진 숙소에 묵는 김 위원장도 전용차량을 이용해 오후 2시 5분쯤 S동 건물에 들어섰다.
30분가량 먼저 도착해 있던 푸틴 대통령은 회담장 입구에 나와 활짝 웃으며 악수로 김 위원장을 반겼다. 푸틴 대통령은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김 위원장은 “맞아주셔서 영광입니다”라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회담장 내부로 들어가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를 배경으로 도열해 있던 양국 수행원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수행단을 소개할 때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던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후 회담장에 착석한 뒤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푸틴 대통령이 단독회담 모두발언에서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추억을 언급하며 호의를 내비치긴 했으나, 양측 모두 발언을 주고받는 내내 고정된 자세로 앉아 다소 경직된 모습을 유지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중대 의제가 논의된 만큼 우호국인 북러도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 정상은 단독회담에 이어 오후 4시 5분부터 각국 수행단과 함께 확대회담을 진행했다. 확대회담엔 북측에서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단 둘만 배석해 외교 투톱으로서 위상을 과시했다.
/그림 2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서로 선물로 준비한 장검을 교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총 3시간 50분여의 회담 후 오후 6시쯤부터 공식 만찬 겸 연회가 열리면서 분위기가 다시 반전됐다. 푸틴 대통령이 회담 참석자들에게 기념 훈장을 선물한 뒤 두 정상이 서로 장검(긴 칼)을 선물로 주고 받았다. 우방국인 양국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면서도 철권통치를 펼치는 두 ‘스트롱맨’의 만남다운 선물이었다. 김 위원장은 “절대적인 힘을 상징하고 있다. 당신을 지지하는 나와 인민의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 풍습에서 칼을 줄 때는 악의를 품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돈을 주게 돼 있다”며 장검과 함께 동전을 건넸다. 이어진 만찬에서 러측은 러시아산 대구와 사슴고기 만두 등 전통 슬라브식 요리를 대접했다.
회담장 주변엔 철두철미한 통제가 이뤄졌다. 전날까지 비교적 자유로웠던 모습과 달리 러시아 측은 S동 건물과 그 옆 김 위원장의 숙소(호텔 1동)를 포함해 해안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호텔 5개동 근방에 모두 사복 경찰을 배치해 통행을 막았다. 회담장 내에 프레스센터가 차려졌으나 러시아 언론과 극소수의 외신을 제외하곤 출입되지 않았다.
다만 캠퍼스 내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20대 대학생들이 회담장 인근에 줄지어 서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도착 모습을 지켜보는 이색 풍경도 연출됐다. 회담장 측면이 내려다 보이는 기숙사 학생들은 방 안에서 창문을 열어 구경하기도 했다. 극동연방대를 다니는 북한 유학생들이 캠퍼스에 삼삼오오 돌아다니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 위원장이 26일 이곳 유학생들과 만남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으나 ‘언제 김 위원장을 만나냐’는 질문에 한 학생은 “그런 일정 저희는 잘 모릅네다”고 답했다. 그러나 만남을 준비하듯 정장 차림으로 가슴 왼편에 김일성ㆍ김정일 부자가 그려진 붉은 배지(초상휘장)를 착용한 학생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26일 유학생 간담회를 갖고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시찰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찰 일정과 관련해 올레크 코줴먀코 연해주 주지사는 국영 로시야24 TV와의 인터뷰에 “김 위원장은 문화시설 방문, 노동자 단체와의 만남 등을 가질 것”이라며 “주로 보통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일정으로, 그가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은둔자에서 벗어나 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를 원하는 김 위원장이 일반 지도자들처럼 방문국 주민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문화외교’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블라디보스토크=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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