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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문재인 2년에 또다시 읽는 취임사

입력
2019.04.25 18:00
수정
2019.04.29 10: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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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압승에 취임 1년 평가 아전인수

2년만에 지지율 반토막, 평화ㆍ경제 위기

통합ㆍ소통ㆍ겸손 약속, 내로남불로 실종

문재인 대통령이 난장판 국회가 이어진 25일 문형배ㆍ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남석 헌재소장, 이미선 재판관, 문 대통령, 문형배 재판관 부부/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난장판 국회가 이어진 25일 문형배ㆍ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남석 헌재소장, 이미선 재판관, 문 대통령, 문형배 재판관 부부/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자신의 SNS에 ‘처음처럼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올렸다. 4ㆍ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직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 참석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쓴, 쉼없이 달려온 취임 1년을 돌아보는 소회와 포부였다.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한 1년,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면서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고자 한 1년, 핵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고자 한 1년,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드리고자 한 1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참뜻은 자화자찬이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뒤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강고한 만큼 변화의 주역인 국민이 손을 꼭 잡아달라”는 당부에 있다. 국정지지율이 여전히 80%를 넘나들던 때에 감성적 언어로 국민을 소환한 것은 그즈음 문 대통령이 내놓은 두 개의 입장문과 맥락을 같이한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자유한국당 등 야당 반대에 부닥쳐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한 채 폐기되고, ‘김기식 금감원장’ 카드가 로비성 외유와 셀프 후원금 의혹에 휩싸여 날아가자 “(개혁을 위한)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 개탄해서다.

대안도 없이 반대와 몽니를 일삼는 세력을 향한 문 대통령의 탄식 덕분인지, 한 달 뒤 6ㆍ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거둔 성적은 눈부셨다. 문 대통령이 축배에 앞서 “식은 땀이 나고 등골이 서늘하다”며 내부의 자중과 겸손을 당부할 정도였다. 지난해 이맘 때 필자는 ‘문재인 1년에 다시 읽는 취임사’라는 칼럼에서 문 정부가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국민과의 약속과,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는 선언이 잘 이행되고 있느냐고 따졌다. 정의를 독점한 ‘청와대 정치’에 대한 우려였으나 민심의 평가는 달랐다.

그리고 다시 1년. 그 사이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거의 반토막이 났고, 50%를 웃돌던 민주당 지지율은 30%대에서 한국당에 쫓기는 처지가 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악재가 많긴 했다. 드루킹 댓글조작에 연루된 김경수 경남지사 의혹이 줄곧 논란이 됐고,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 수사관의 사찰 주장,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유튜브 폭로, 환경부 블랙리스트 시비가 이어지면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던 다짐에 금이 갔다. “능력과 적재적소에 기반한 삼고초려 탕평인사”를 공언했으나 인사마다 ‘내 사람이 먼저’인 ‘캠ㆍ코ㆍ더’ 논란을 낳았고 최근 2기 내각 인선과 청와대 대변인 부동산 의혹은 내로남불 공방의 정점을 찍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새로운 길로 포용성장 탈원전 재벌개혁 등 진보적 정책을 쏟아냈으나 이념 과잉과 전략 부재 탓에 ‘시장의 복수’를 불렀다. 올해 1분기 성장률 -0.3%는 그 결과다.

무엇보다 “평화가 일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자원은 물론, 자존심까지 던져 ‘되돌릴 수 없는 지점’까지 왔다고 여겼던 한반도 평화 구상이 김정은의 냉랭한 ‘오지랖 발언’으로 생채기가 난 것은 뼈아프다. 정치와 경제 부문의 실점을 덮어줬던 평화가 되레 짐이 될지 모르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가장 강조한 대목은 통합과 소통이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차별없는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보름 후 취임 3년을 맞는 문 대통령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 소통과 협치인 것은 아이러니다. 작금의 정치 부재와 정책 혼선은 정의를 독점한 채 소통보다 배제나 적대를 앞세운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2년이 지나면 곧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를 맞는다. 2년 전 추모식에서 “우린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 기억도 마주할 것이다. 그 다짐은 제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라면 뭐가 문제인가. 취임사를 또 들추는 이유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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