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러시아 또 내정간섭” 강력 반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지역 주민들의 러시아 시민권 취득에 걸리는 기간을 대폭 단축했다. 러시아 출신이 다수인 이 지역 주민들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을 확대한 조치다. 우크라이나는 “내정 간섭”이라며 강력 반발했고, 러시아와의 종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최근 대통령에 당선된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당선인의 외교력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24일(현지시간) AP 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주민들이 러시아 시민권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돈바스 주민은 신청 뒤 3개월 이내에 러시아 여권을 수령할 수 있게 된다.
돈바스 지역은 국제법상 우크라이나 영토지만, 2014년 이후 실질적으로는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점령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도네츠크 공화국’ 또는 ‘루간스크 공화국’이라며 부르며 분리주의 반군에게 군사 지원을 해왔다.
러시아는 이번 행정명령이 인도주의적 차원의 조치라는 입장이다. 크렘린궁은 “국제법상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원리, 규범에 따라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해 결국 병합하려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번 조치가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과정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는 친서방 노선을 택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복 조치로 2014년 3월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를 침공, 강제 병합했다. 강제 병합의 명분으로 러시아는 러시아 귀속 찬반을 묻는 크림 거주 주민들의 투표에서 96.7%의 찬성표가 나온 점을 내세웠다. 돈바스 지역 주민의 러시아 시민권 취득 절차를 완화한 것 역시 강제 병합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달 말 퇴임하는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는 “러시아의 또 다른 내정간섭 행위”라며 강력 반발했다. 파블로 클림킨 외교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이번 조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지난 22일 당선돼 내달 취임을 앞둔 젤렌스키 대통령 당선인도 초반부터 중대한 도전을 맞게 됐다. 젤렌스키 당선자 측은 “러시아의 호전성이 재차 확인됐다”며 “러시아의 이번 조치는 동부 지역 갈등 종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비난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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