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창작에 수익 극대화, 방송사 떠나 홀로서기
‘개그콘서트’ 연출로 유명한 서수민 전 KBS PD는 지난 1월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직을 고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 일컬어지는 탁현민 전 행정관의 후임 자리였다. 서 전 PD는 당시 측근을 통해 “큰 보직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영광”이라면서도 “제 위치에서 하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KBS 자회사인 몬스터유니온에서 예능부문장을 지내다가 최근 퇴사해 1인 기획사를 차렸다. 서 전 PD는 이곳에서 새 콘텐츠를 기획 중이다.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KBS 출신 이영돈 PD도 최근 1인 기획사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사를 나와 1인 기획사를 차리는 PD가 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 자유로운 활동과 수익 극대화를 위해 대형 기획사를 떠나 홀로서기를 했던 것처럼, PD도 창작의 자유를 누리면서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 대한 보상을 최대한 받으려고 하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PD라면 이제 한 번쯤 1인 기획사를 꿈꾼다. ‘대박’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 받게 되는 돈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방송사 PD로 일할 경우 콘텐츠 수익의 대부분을 회사가 가져가는데, 기획사를 차리면 자신이 온전히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에선 이미 PD들이 스타 배우처럼 ‘러닝 개런티(흥행에 따라 인센티브를 얻는 방식)’를 받는 것이 보편적이다.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 근무하는 한 예능프로그램 PD는 “방송사에서 메인PD를 역임했던 사람 중에서 호시탐탐 독립의 기회를 노리는 이들이 꽤나 있다”며 “결국 돈 때문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시장의 확대도 PD들의 ‘독립선언’을 부추기고 있다. 넷플릭스 등에서 오리지널 예능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PD들이 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예능프로그램 ‘범인은 바로 너’ 시즌2를 올해 공개할 예정이다. 지난해 공개된 시즌1은 유재석과 아이돌 엑소의 멤버 세훈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시즌1은 한 회당 제작비가 1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방송가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국내 OTT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의 OTT 옥수수는 지난해 ‘엑소의 사다리타고 세계여행’을 방송했으며, KT도 같은 해 아이돌 웹 예능 ‘아미고TV’를 출시해 주목을 받았다.
독립과는 거리가 멀었던 예능프로그램 작가에게도 1인 기획사 바람이 불고 있다. PD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이들이 독립을 통해 제 몫을 챙기려는 움직임이 움트고 있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누구나 알 만한 예능프로그램 작가가 1인 기획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OTT가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미국 등에서는 작가들의 방송사 엑소더스가 이미 진행 중이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방송작가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넷플릭스 등 OTT가 방송가 질서를 흔들자 영국 작가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더 이상 방송사가 필요한가”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OTT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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