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외교관’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 총장 
안호영(왼쪽) 전 주미대사가 23일 서울 삼청동 북한대학원대 통일관 로비에서 박일근 논설위원과 북핵 협상과 한국의 외교전략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4년 통일관 개관식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대형 사진이 로비 벽에 걸려 있다. 고영권 기자

안호영(62)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2013년 6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4년5개월 간 주미대사를 지낸 외교관 출신이다. 김동조 전 외무장관(1967~73년) 이후 최장수 주미대사다. 그가 주미대사로 재임한 기간은 북한이 세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미국이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코피 작전)을 검토할 정도로 엄혹한 때였다. 1977년 외무고시(11회) 합격 후 국제협약과장, 다자통상국장, G20 대사, 제1차관 등 외교 현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40년 전문 외교관으로 살아온 그는 이후 숙명처럼 북한대학원대 총장이 됐다. 현역에선 떠났지만 비핵화 협상과 한미 관계, 우리 외교의 전략 등은 항상 그의 현안이다.

최근 한국 외교가 사면초가 양상이다. 무엇 하나 풀리는 것 없이 답답한 시간의 연속이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표류하고 있고, 중국 일본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구겨진 태극기 등 잇따른 실책으로 외교부의 기강해이 논란에 외교관의 명예마저 추락하고 있다. 40년 외교 경험자는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27일은 4ㆍ27 판문점 선언 1주년이다. 1년 전엔 큰 기대가 있었지만 점차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 이스라엘, 네덜란드 등 강소국 국민의 특징은 이악스럽다는 데 있다. 국익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고 그 이익을 지키기 위해 끈질기다. 규정할 수 없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거창한 얘기엔 신경 쓰지 않고 진짜 이익이 뭔지 따진다. 매우 실용적이다. 이런 강소국이 잘 살고 단단하다. 우리는 그런 나라에 비해 큰 나라다. 다만 강소국의 개념도 상대적이다. 우린 큰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실용주의가 필요하다. 이악스러워져야 한다. 무엇이 진짜 한반도 평화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얘기하지 말고 진짜 중요한 게 뭔지 판단해야 한다. 경제든 안보든 우리는 다른 강소국과 비교할 때 국가적 과제에 관한 우리의 생각과 논의, 정책이 다른 요소들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남남갈등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싱가포르나 이스라엘, 네덜란드라고 그런 갈등이 없겠나. 다 있다. 그러나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의외로 쉽게 뭉친다. 벨기에는 국내 정치가 굉장히 복잡하다. 언어, 종교, 이념, 지역까지 엇갈려 정당이 10여개나 된다. 정부 구성을 500일 이상 못할 때도 많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201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리비아 파병을 결정하자 국회가 거의 전원일치로 찬성했다. 벨기에 국민들은 ‘작은 나라가 어떻게 사나, 나토가 있어야지, 나토에서 한다고 하면 찬성해야 한다‘고 굉장히 쉽고 명료하게 생각한 것으로 보였다. 이런 작은 나라도 안보 문제에선 일사불란하다. 우리나라는 안보 문제에 대한 견해가 너무 다양하다. 실사구시가 필요하다. 오늘 밤 내 가족이 편안히 자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린 그게 잘 안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생일 축하연에 참석한 뒤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를 함께 할 예정이다. ‘2분 단독회담‘을 한 문 대통령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국력의 차이인가 외교력의 차이인가 

“국력이나 외교력의 차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미국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국가 전략과 관련이 깊다. 영국의 헬포드 존 맥킨더가 1904년 해양국가의 국가전략에 대해 쓴 책이 미국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그 해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었다. 일본과는 사이 좋게 지내고 필리핀은 미국이 직접 지배함으로써 미국 안보를 든든히 한 셈이다. 그 때도 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대륙국가들이 미국의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후 냉전 체제가 되자 에치슨 라인이 그려졌다. 일본 열도와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섬나라가 미국 안보의 경계선이라는 얘기다. 20세기 초 냉전이 시작되자 맥킨더의 아이디어가 다시 부상하며 미국의 안보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냉전이 지나고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그랜드 체스보드’라는 책을 썼다. 똑같은 얘기가 나온다. 서울에도 가끔 오는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도 비슷한 말을 한다. 지난 100여년간 미국의 기본적인 대 아시아 전략은 ‘오프쇼어 밸런싱(Offshore Balancingㆍ역외균형, 미국 대륙 밖의 안보 문제는 필요에 따라 동맹국을 지원하는 형태로만 관여하는 것)이다. 이런 미국의 전략에서 일본은 아주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걸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두 번째, 일본이 미국을 보는 눈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안보 사안도 의견 일치를 보기가 힘들지만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인구가 우리의 3배지만 국가 안보전략에 대한 통일된 견해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아베 총리가 안심하고 멜라니아 생일 잔치에도 가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골프채도 선물한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미관계 현안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뭔지 모르겠다”고 해 파장이 일었다.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적잖다. 한미 동맹은 굳건한가 

“해리스 대사의 언급은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미대사를 마치고 한국에 왔더니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 동안의 미국 대통령과 다른 것 아니냐고 많이 물어봤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늘 파격적(unconventional)이란 형용사가 붙는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접근 방식도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 ‘다른 게 없다’고 계속 설명했다. 실질적 내용(substance)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 미국인은 초당적(bipartisan)이란 표현을 좋아한다. 가장 초당적 사안이 북핵 문제다. 굉장히 일관돼 있다. 먼저 목표가 한결같다. 2000년대초 조지 부시 행정부 당시 만들어진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ㆍ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가 목표다.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이후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ㆍ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라는 말을 쓰지만 내용을 보면 CVID와 똑같다. 목표뿐 아니라 추구 방식도 마찬가지다.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압박(Pressure) 관여(Engagement) 억제(Deterrent)다. 제재를 통해 압박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 관여하며 북한이 한국에 안보 위협을 가하는 것은 확실히 억제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용한 과정이나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월말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북한 주장을 상당히 수용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 등을 보면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러한 톱다운 방식과 미국의 유연한 태도가 이번엔 지난 30년간의 북핵 협상 실패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한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미 대북 정책의 실질적 내용은 바뀐 게 없다. 비건 대표는 포드자동차 부사장을 할 때부터 자주 만났다. 서울에 왔을 때도 북미 간 접점을 찾기 어렵지만 결국 로드맵을 만드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얘기를 해 줬다. 미국은 그런 얘길 하지 않다가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처음 했다. ‘동시적ㆍ병행적 조치‘에 대한 얘기도 꺼냈다. 비핵화 안 하면 제재 완화 없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해결이 되겠냐고 사회자가 물었더니 ‘비핵화를 해야 제재 완화를 할 수 있지만 그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는 말도 했다. 다만 행간을 읽으라고 덧붙였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비핵화의 정의에 대해 북한과 생각이 다른데 같이 해야 한다고도 했다. 비건 대표는 이후 평양도 다녀왔다. 싱가포르 합의 4개 사항별로 얘기하고 왔다고 밝혔다. 이런 비건 대표의 움직임을 보면서 결국 미국이 로드맵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그 한 축이 완전한 비핵화, 다른 축이 관계 정상화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은 결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영변만 내놓고 제재 완화를 다 해 달라고 해 회담장에서 걸어 나왔다고 했다.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열어 ‘영변을 내놓으며 제재 완화를 다 해달라고 한 게 아니다. 제재 11개 중 5개만 해달라고 했다. 5개도 민생과 관련된 부분만 해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해석의 문제로 보인다. 11개 중 앞의 6개는 무기 거래에 관한 것이다. 북한이 아프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게 2016년 3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270호에 처음으로 석탄 제재가 들어간 것이다. 이후 철광석, 수산물, 섬유류, 인력송출이 추가됐다. 거의 모든 북한 수출품을 제재했다. 처음 2270호에는 ‘민생 예외’라는 규정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 민생 예외라고 하니 나중엔 이도 없앴다. 북한의 요구가 아픈 걸 다 빼달라는 것이라고 생각한 미국은 못 받겠다고 했다. 미국은 영변 말고도 핵 관련 시설과 무기와 물질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다 안다. 그건 다 놔두고 영변만 갖고 사실상 가장 효과적인 제재 완화를 해달라고 하니 미국 입장에선 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은 ‘우리가 원하는 건 이거다’며 문서를 주고 나왔다고 본다. 처음 얘기대로 미국은 대단히 일관된 태도로 임한 것으로 본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워싱턴으로 돌아가면 협상에 대해 미국 조야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한데 영변만 받고 다 내줄 수 있었겠나.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의 셈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셈법을 빨리 알아야 한다. 미국의 셈법은 안 변했고 앞으로도 변하길 기대하기 어렵다. 그게 현실이다.”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AP=연합뉴스
 -북한은 여전히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궁합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진 것 같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좋게 지내면 나쁠 게 없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 하노이에서 경험한 실망을 거듭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미국은 구조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없다. 미국 조야의 구성을 봐야 한다.“

 -북한이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얘긴가 

“착각일 수도 있고 고도의 선전ㆍ선동 전술일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2017년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이제 핵 능력은 주머니에 들어왔으니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뒤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선 ‘우리를 굴복시키려 한다면 오산이다. 우리는 이렇게 몇 십 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수 있다’며 ‘자력갱생’을 주창하고 나섰다. 진짜로 그렇게 할 건지 고도의 선전ㆍ선동 전술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북러 정상회담은 하노이 이후 김 위원장의 첫 외교 행보다. 러시아가 뒷문을 만들어줄까 

“최근 역대 주한러시아대사 등이 모인 회의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얘기가 나왔다. 러시아에 있는 북한 송출 인력을 올해 말까지 돌려보내는 문제가 있는데 러시아 측 인사가 ‘예외조항을 만들어 놨어야 했는데 걱정이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었다. 안보리에서 약속했으니 지킬 수 밖에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최근 외교부의 어이없는 실수와 일탈이 계속되고 있다. 40년 외교 현장을 지킨 대선배로서, 외교란 무엇이고 외교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외교는 무엇보다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게 국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제가 아는 외교의 목표는 평화(Peace) 번영(Prosperity) 국격(Prestige) 등 3P다. 재외동포 700만명, 해외여행 연 1,400만명(연인원)을 생각하면 사람(People)까지 더해 4P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 상 외교의 역할이 크다. 평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 비핵화가 평화에 도움이 되는 건지, 한미 동맹이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 한일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중국의 존재는 뭔지 고민을 계속 해야 한다. 매일 매일의 고민이 쌓이면 나중엔 큰 차이가 된다.”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우리 외교에서 분단 극복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보면 북한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많이 갖게 된다. 북한을 제대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데는 역시 북한대학원대라고 생각했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 1년에 한 번 정도 워싱턴에 올 때마다 뵙고 북한에 대한 경험을 청해 들은 게 인연이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북한대학원대학교가 올해 30주년이다. 경남대 행정대학원 북한학과가 생긴 게 1989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북한학과다. 북한학과가 나중에 대학원이 됐고 대학원이 독립하며 북대가 됐다. 북한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의 대상이 된 지 30년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볼 때가 된 것 같다.”

인터뷰=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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