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非메모리 반도체에 명운 건 이유]
다품종 소량 생산해야… 각 분야 1위 인텔ㆍ퀄컴 등과 경쟁 불가피
삼성전자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의 초대형 투자를 결정한 것은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메모리 반도체 대표 제품인 D램은 전세계 판매량의 절반 가량이 삼성 제품이고,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삼성은 40% 가까운 점유율로 독주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주로 컴퓨터 등의 저장 장치에 쓰이는 기기로 전원이 꺼지면 정보가 사라지는 D램과 전원이 꺼져도 저장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낸드 플래시로 나뉜다.
하지만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비메모리 분야로 넘어오면 삼성의 위상은 크게 달라진다. 삼성을 포함한 국내 기업의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4.1%에 불과하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다른 반도체를 통칭하지만, 보통 시스템 반도체를 비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주로 정보 저장을 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는 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전자기기에 부착된 카메라의 눈 역할을 하는 이미지센서 등이 모두 시스템 반도체다.
글로벌 시장에서 시스템 반도체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메모리 1위’ 삼성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 변동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극명하게 갈려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고 지난 2년여 간 역대 최고 실적을 갈아치우다가 올해 들어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기록한 것도 이런 이유다.
전체 수익의 75% 이상을 반도체에 의존하는 삼성전자로서는 메모리에 편향된 반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선해야 안정적인 경영을 지속할 수 있다. 또한 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시스템 반도체에서 2030년 까지 1등을 차지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이유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 발을 들이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소품종 대량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는 8,000개에 달하는 다품종의 반도체를 소량으로 생산해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 우수 인력들을 확보해야 하고, 수십년간 시장을 장악해 온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선 분야별 선두 기업이 각기 다르다. CPU 분야에서는 인텔이, 모바일프로세서와 모뎀 분야에서는 퀄컴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밖에 이미지 센서는 일본의 소니가, 네트워크 칩 분야에서는 브로드컴이 경쟁사들을 따돌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삼성의 시스템 반도체 분야 투자 강화 움직임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보고 있다. 삼성은 메모리 분야 1등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데다, 100조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바탕으로 언제든 시스템 반도체 업체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계속 공략한다면 삼성의 글로벌 1위 목표가 실현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980년대 삼성이 반도체 시장에 처음 진입할 때 메모리 시장에서 1등을 차지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지만, 결국 삼성은 해냈다”며 “40년만에 삼성이 비메모리 시장 공략을 선언한 것에 글로벌 업체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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