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정부가 23일(현지시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삼엄한 ‘공안정국’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검경에게 영장도 필요 없는 강력한 체포ㆍ수색권한이 주어지면서 국제인권단체들은 무분별한 구금과 고문 행위를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테러 배후로 국내외 급진 무슬림 단체들이 지목되자 대부분 불교도인 일반 시민들까지 무슬림을 상대로 보복 위협을 가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스리랑카 당국에 의한 인권탄압 우려가 유엔과 인권단체 등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 조치는 스리랑카 내전 동안 반군을 상대로 한 고문과 가혹 행위, 성학대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됐다. 또 1970년대 제정돼 아직도 유효한 '반(反)테러법'은 영장과 재판 없이도 피의자를 최대 18개월 구금할 수 있도록 해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폭탄 테러 이후의 폭압적 사회 분위기가 소수자에게 더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의 남아시아 조사위원은 “대부분의 폭력을 소수자가 감당하는 실정”이라며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벌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 내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하다. WP는 “이슬람국가(IS)가 테러 배후를 자처하면서 종교 긴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날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네곰보의 합동장례식 소식을 전하면서, 시민들의 슬픔이 점차 분노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면서 “스리랑카 각지에서 무슬림 소유의 상점이 파괴되고, 수백 명의 무슬림들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다종교’ 지역을 떠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테러로 친척과 친구들을 잃은 수레시 쿠마라(35) 씨는 NYT에 “이슬람교도를 죽이고 싶은 심정”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스리랑카 정부가 이번 테러가 뉴질랜드 테러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감행됐다는 예비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반(反)무슬림 여론은 더욱 들끓었다. 다만 뉴질랜드 총리실은 “근거가 될 정보가 없다”며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한편 스리랑카 당국은 용의자 58명을 체포하는 등 강력한 공안통치로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알고도 못 막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있다. 미 CNN 방송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당국은 인도 측 정보 등을 통해 이달 초 이미 사건 배후로 지목된 NTJ 지도자 ‘자흐란 하심’ 등 용의자 명단을 확보했고, 사고 2시간 전까지도 경고를 받았으나 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24일 현재 359명으로 늘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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