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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대 그 소품] 갈대로 만든 ‘리드’ 없으면 목관악기는 무용지물

입력
2019.04.25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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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소품을 눈 여겨 본 적 있나요? ‘공연 무대에서 쓰이는 작은 도구’를 뜻하지만, 그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소품으로 공연을 읽어 보는 ‘그 무대 그 소품’이 격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목관악기는 '리드'를 통해 소리를 낸다. 리드는 악기의 음정과 음색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연주자들에겐 자부심이다. 이미성 서울시립교향악단 오보에 수석의 리드(왼쪽), 신민석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바순 수석이 직접 만든 리드. 연주자의 이름과 이니셜이 도장으로 찍혀 있다. 본인 제공
목관악기는 '리드'를 통해 소리를 낸다. 리드는 악기의 음정과 음색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연주자들에겐 자부심이다. 이미성 서울시립교향악단 오보에 수석의 리드(왼쪽), 신민석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바순 수석이 직접 만든 리드. 연주자의 이름과 이니셜이 도장으로 찍혀 있다. 본인 제공

오보에, 클라리넷, 색소폰, 바순. 모두 목관악기다. 목관악기는 스스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악기 입구에 공기 흐름에 따라 진동하는 얇고 작은 나무 조각이 없으면 악기로선 무용지물이다. 그 나무 조각을 ‘리드(Reed)’라 부른다.

목관악기 중에도 리드를 사용하지 않는 플루트가 있고, 금속으로 만든 리드를 쓰는 하모니카도 있긴 하다. 앞서 언급한 악기 4가지는 모두 ‘리드’의 재료로 ‘아룬도 도낙스’라는 이름의, 키가 3m까지 자라는 커다란 갈대를 쓴다. 이름은 갈대이지만, 대나무처럼 속이 빈 원통형 나무다. 지중해와 남미의 농장에서 대량 재배한 갈대가 숙성 과정을 거쳐 리드로 탄생한다. 어느 악기와 짝이 될지는 갈대의 굵기가 결정한다. 가장 가는 갈대는 오보에의 리드가 되고, 클라리넷-바순-색소폰 순서로 리드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

오보에와 바순은 두 장으로 된 겹리드를 사용하는 악기. 오보에와 바순 연주자들은 악기 연주를 배우면서 리드 제작 방법을 함께 익힌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야구 선수가 배트를 직접 만드는 셈이다. 왜일까. 완제품 리드를 구입할 경우, 연주자와 악기에 딱 맞는 리드를 만날 확률은 리드 10장 중 겨우 2장 내외다. 그래서 연주자들이 리드를 찾아 헤매는 대신 손수 만드는 전통이 굳어졌다.

이미성(41) 서울시립교향악단 오보에 수석과 신민석(43)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바순 수석은 음악계에서 소문난 ‘리드 제작자’이기도 하다. 두 사람에게 리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이 수석은 “악기가 분신이라면, 리드는 정성”이라고 요약했고, 신 수석은 “악기가 아무리 울림통이 좋아도 좋은 리드를 써야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리드의 원재료를 한국에선 구하기 어렵다. 갈대를 얇게 대패질한 뒤 리드의 기본 모양을 잡은 ‘케인’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사용한다. 연주자들은 케인을 직접 깎아 다듬는다. 요즘은 플라스틱이나 실리콘 재질로 만들어진 리드도 나오지만, 연주자들은 여전히 나무를 선호한다.

오보이스트들은 손수 갈대를 깎아 리드를 만든다. 이미성 서울시향 오보에 수석의 리드 메이킹 모습. 이미성 수석 제공
오보이스트들은 손수 갈대를 깎아 리드를 만든다. 이미성 서울시향 오보에 수석의 리드 메이킹 모습. 이미성 수석 제공

리드는 악기의 음정과 음색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른 사람들에겐 다 똑같은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연주자들에겐 0.1%의 차이도 중요하다”는 것이 두 수석의 공통된 설명이다. “바로크나 고전 음악을 연주할 때는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리드를 쓰고, 현대 쪽으로 올수록 더 강한 힘을 받아주는 리드를 씁니다. 곡에 따라 다른 리드를 쓰는 거죠.”(신민석 수석) “오보에의 경우 직접 리드 깎는 법을 배우면서 비로소 연주자의 음색과 음악이 생긴다고 봐요. 좋은 리드가 없으면 좋은 연주가 어렵기 때문에 리드를 깎지 못해서 전공을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이미성 수석)

리드는 예민한 소품이다. 날씨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세 삭거나 부러지는 소모품이기도 하다. 크기가 작은 오보에 리드는 교체 주기가 일주일도 채 안 된다. 최상의 연주력은 3번의 연주까지만 유지된다. 오보에 리드보다 큰 바순 리드는 2, 3주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이 수석과 신 수석 모두 연주 전에 6, 7개의 리드를 ‘완벽하게’ 준비해 둔다. 리드 하나를 깎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에서 1시간까지로, 사람마다, 때에 따라 다르다. 이 수석은 “하루에 하나씩 리드를 깎는 것은 저 자신과의 약속”이라며 “중요한 연주를 앞두고는 마음에 쏙 드는 리드가 나올 때까지 20~30개씩 깎는다”고 했다.

형형색색의 실을 이용해 다양한 모양으로 꾸며진 바순 리드. 인스타그램 캡처
형형색색의 실을 이용해 다양한 모양으로 꾸며진 바순 리드. 인스타그램 캡처

리드를 직접 만드는 것이 고행이기만 한 건 아니다. 연주자가 원하는 스타일로 꾸밀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양한 색상의 실을 사용해 묶거나, 취향에 따라 매니큐어나 왁스를 칠하기도 한다. 직접 만든 리드는 연주자들에게 자부심이기도 하다. 리드에 자신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도장으로 찍어두는 이유다. 신 수석은 “한국인의 손재주가 정교한 리드 제작에서도 발휘된다”고 설명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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