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마더’ 발매… 전국 순회 콘서트
“유학 가기 전까지만 해도 제 유아 시절을 빼앗긴 것 같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원망했어요. 1983년 이탈리아에서 오롯이 혼자가 된 순간, 가장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이 어머니더라고요.”
30년 넘게 ‘세계 최정상 소프라노’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악가 조수미(57). 어린 시절 그의 꿈은 예술가와 거리가 먼 수의사였다. 어머니 뜻에 따라 들어선 성악의 길 끝에 조수미는 ‘신이 내린 목소리’라 불리는 소프라노로 우뚝 섰다. 조수미가 최근 낸 44번째 앨범 제목은 ‘마더(Mother)’, 어머니다. 어머니를 향한 사랑,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23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열린 앨범 발매 간담회에서 조수미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어머니 품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2003)을 받은 조수미의 어머니 김말순씨의 교육열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06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조수미에게 귀국하지 말고 공연에 집중하라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조수미는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딸이었다. 슬픔을 억누른 채 프랑스 파리에서 관객을 위해 끝까지 노래 했고, 앙코르까지 마친 뒤에야 아버지의 영면 소식을 알렸다. 당시 공연 영상은 ‘나의 아버지께(For my father)’라는 제목으로 남아 있다. “아빠는 이렇게 음악으로 기억되는데, 나를 기억할 무언가도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김씨가 한 말이 이번 신보로 이어졌다.
스스로 성악가를 꿈꿨던 김씨의 교육열은 조수미에게 부담이기도 했다. 김씨는 “너는 나처럼 결혼을 하지 말고 훌륭한 성악가가 돼서 세계를 누비며 내가 못한 노래를 해야 한다”는 말을 어린 딸에게 매일 2,3번씩 반복했다. 조수미의 피아노 연습이 끝날 때까지 방문 앞을 지키고 서서 8시간 동안 문을 열어 주지 않은 적도 있다. 조수미는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사랑’이라 이해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초라한 뒷모습에서 어머니가 아닌 한 여성을 봤어요. 어떻게 하면 저 분을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죠. 어느 날 어머니가 제 곁을 떠난다면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그리워하는 분이 될 거예요.”
김씨는 8년 째 치매를 앓고 있다. 조수미를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병이 깊다. 조수미는 그런 어머니가 좋아했던 노래와 모녀가 함께 불렀던 노래들을 음반에 담았다. 특히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Songs my mother taught me)’는 김씨가 가장 좋아했던 곡이라고 한다.
음반은 조수미의 어머니만을 위한 건 아니다. 조수미는 “본인의 꿈을 희생하고 자식들을 위해 살았던 모든 분들을 위한 음반”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선곡한 13곡은 클래식, 크로스오버, 가요, 민요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올해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작곡된 ‘I’m a Korean’도 특별 수록했다. “어머니 같은 큰 사랑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요. 그 사랑을 담아 모두에게 베풀 수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조수미는 어버이날인 5월 8일까지 전국을 돌며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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