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없이 소리 재생 ‘CSO 기술’
거실에서 TV로 드라마를 보다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볼륨을 높였더니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아내가 “TV 소리를 줄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가 있다. 설거지 때문에 드라마를 보지 못하는 아내의 ‘심통’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엌으로 가보니 정말 TV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TV 앞에 있는 사람은 정작 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멀리 있는 사람 귀에 TV 소리가 더 잘 전달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애프터서비스를 요청해 검사를 받아 봤다. 그런데 TV제조사의 대답은 “고장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부엌에서 TV소리가 더 잘 들리는 이유를 살펴보니 최근 출시된 TV들의 얇은 베젤(테두리) 디자인과 관련이 깊었다. TV 제조사들은 베젤이 얇고 슬림한 디자인의 TV를 만들기 위해 화면 좌우에 있던 스피커를 화면 하단이나 후면에 배치했는데 이게 문제의 주 원인이었다.
스피커가 하단이나 후면에 배치될 경우 TV 소리는 바닥에 한번 부딪힌 다음 시청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소리가 명료하게 들리지 않는다. TV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TV 앞에 앉은 사람은 소리가 잘 안 들리고 TV 뒤에 있는 부엌에서 일하는 아내 귀에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유다.
지금보다 화질이 훨씬 떨어지는, 과거 브라운관(CRT)으로 불렸던 볼록한 화면의 TV 시절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화면 옆에 스피커를 크게 뽑아 놓아 소리 전달력은 지금 TV보다 더 우수했다.
그런데 CRT TV는 볼록 튀어 나온 화면 옆에 큰 스피커까지 달아놓으니 예쁜 디자인으로 만들기 어려웠다. 이후 모델인 LCD(액정표시장치) TV에서 스피커가 스크린 화면 뒤나 아래로 숨은 이유다.
얇은 베젤, 슬림한 두께의 TV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소리 전달력을 높일 수 없을까 고민하던 TV 제조사들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ㆍ올레드) TV를 출시하면서 고민을 해결할 단서를 찾아 냈다. 고민은 스크린에서 소리가 나는 ‘크리스탈 사운드 올레드(CSO)’ 기술이 해결했는데, 이를 개발한 업체는 LG디스플레이였다.
어떻게 별도의 스피커 없이 화면에서 소리가 재생되게 할 수 있을까. CSO 기술의 핵심은 OLED 패널 뒷면에 고정된 진동유발장치(익사이터)에 있다.
일반적인 스피커는 종이 재질의 진동판이 떨림을 통해 소리를 재생하지만 CSO OLED 모듈 구조에선 익사이터가 전기적 소리 신호를 물리적 떨림 신호로 변환 시켜 스크린 패널 전면에 전달한다. 이 때 OLED 패널은 일반 스피커의 진동판 역할을 담당해 소리를 재생한다.
익사이터는 자기계와 진동계로 구성돼 있다. 자기계는 영구 자석과 도선을 원형으로 감은 코일을 통해 전기적 소리 신호를 상하 진동으로 변환 시키고, 진동계는 이 진동을 패널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LG디스플레이는 CSO 음질 특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OLED 패널과 익사이터를 고정해 연결 시키고 그 사이를 격벽 구조로 설계했다. 이 격벽구조는 진동계의 울림을 패널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불필요한 소리와 반사 등을 제어한다. 또 익사이터의 잦은 진동으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기능도 담당한다.
CSO기술은 스피커가 없어도 음질 측면에서 우수한 성능을 구현한다. 우선 스피커가 스크린 후면이나 하단에 있는 TV와 달리 TV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에게 소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다. 낮은 음부터 높은 음까지 선명하게 균형 잡힌 소리 재생이 가능하다.
넒은 음장감(음의 넓이와 확장)도 CSO 기술의 장점이다. OLED 패널 자체가 커다란 스피커의 진동판이기 때문에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넓은 음장감이 형성된다. 사람들 시선이 꽂혀 있는 TV 스크린에서 소리가 직접 나오기 때문에 소리의 정위감(소리 위치)도 일치한다. 일반 TV의 경우 화면과 소리가 서로 다른 곳에서 재생되기 때문에 이질감이 많았지만 CSO 기술은 영상 속 말하는 사람과 그 소리가 나는 위치가 같아 현장감이 극대화된다. CSO 기술이 적용된 TV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몰입도가 더 높아지는 이유다.
CSO기술이 TV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OLED 스크린이 적용되는 노트북 PC, 스마트폰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실제 LG전자는 전세계 최초로 이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폰 G8 싱큐를 지난달 출시했다.
별도 스피커가 아닌 스마트폰 스크린에서 직접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수화기 구멍이 아니라 화면 어디에 귀를 대더라도 문제 없이 통화할 수 있다. 만약 통화음을 크게 듣기 위해 스피커폰을 사용하면 기존과 동일하게 제품 하단에 위치한 스피커에서만 소리가 나온다.
스마트폰으로 영화 등을 볼 때 하단에 있는 스피커와 스피커 기능을 하는 스크린을 동시에 사용하면 2채널(ch) 스테레오 사운드를 즐길 수도 있다. 또 CSO 기술로 기존 스마트폰의 수화기 역할을 하는 리시버 구멍을 없앴기 때문에 전면 디자인도 훨씬 깔끔해졌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OLED 스크린의 최대 장점인 초고화질과 뛰어난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CSO 기술은 향후 다양한 기기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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