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의 마지막 방문국인 카자흐스탄은 핵을 스스로 폐기했던 나라인 만큼 북한 비핵화가 지상과제인 우리 입장에서는 중요한 참고점이 될 만한 나라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비핵화를 주도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만나 비핵화 관련 대화를 나누는 등 핵 관련 행보를 했다.
역사상 가지고 있던 핵무기를 포기한 나라는 단 4개국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접한 앙골라나 모잠비크 등에 소련 지원을 받는 쿠바군이 진주하는 등 안보가 위협받자 핵을 개발했다. 하지만 냉전 해체와 함께 안보 위협이 감소하자 남아공은 스스로 핵을 포기했다. 나머지 3개국은 모두 소련 연방 해체로 인해 생성된 비자발적 핵 보유국이다. 소련 해체 당시 많은 독립국가들이 탄생했는데,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독립 시점에 해당국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자산은 해당 독립국의 소유가 됐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ㆍ카자흐스탄ㆍ벨라루스 등 3개국이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27척의 핵잠수함을 비롯해 핵탄두 1,800발, 유럽에 대한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벨라루스는 825발의 핵탄두를, 광활한 초원 등으로 인해 핵 실험장이 다수 존재했던 카자흐스탄도 무려 1,410발의 핵탄두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당시 세계 핵무기 보유 순위는 러시아-미국-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영국 등의 순서가 됐다. 세계 군사력 지형이 흔들린 것이다. 결국 이 세 나라는 핵을 포기했지만, 과정은 좀 달랐다.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걱정됐던 우크라이나는 핵포기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안보 분야에서 위협국인 러시아와 더 깊은 교류를 선택한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은 대단히 적극적이었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450차례의 핵실험으로 인해 핵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막대한 지하자원을 통한 경제발전을 계획했고, 그 자원을 구매할 국가들은 결국 서방세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투자의 보증수표인 미국과 우호적 관계 수립이 될 수 있는 핵폐기에 적극적인 정책을 폈다. 우크라이나가 밀고 당기며 1994년 러시아의 안전보장과 미국의 경제지원 등을 약속받은 ‘부다페스트 각서’가 체결되기 이전에 이미 카자흐스탄은 대부분의 핵을 폐기했고, 부다페스트 각서 체결 후 불과 1년 만인 1995년 12월에 핵폐기를 완료했다.
미국의 넌-루가 법안에 의한 직접 경제지원은 3개국을 합해 16억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UN연설에 따르면 핵폐기 후 무려 1,200억달러의 외자가 유치됐다고 한다. 그런 외자 유치로 경제발전을 이뤄 120달러였던 1인당 GDP가 8,800달러에 이르는 중진국이 됐다. 결국 카자흐스탄의 발전은 ‘경제지원’이 아닌 ‘투자’에 의해서였다. 그 투자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핵폐기가 동인이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카자흐스탄에서 북한 비핵화의 길을 찾으려면 북한도 카자흐스탄처럼 스스로 핵리스트를 만들고 전면적인 사찰을 받으며 핵무기들을 제3국으로 내보내야 한다. 또 모든 핵관련 기술자들의 전직과 전직 후의 감시까지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 카자흐스탄은 그 모든 절차를 적극 수행했기에 1,410발의 핵탄두와 각종 핵관련 시설을 불과 4년 만에 완전히 비핵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카자흐스탄처럼 경제발전과 오랜 권력을 누리려면 북한도 스스로 주도적인 핵폐기에 나서면 된다. 세계 경제력 1ㆍ2ㆍ3ㆍ11ㆍ12위 국가에 둘러싸여 있는 북한의 입지조건이라면 카자흐스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투자가 들어오게 될 것이 필연적이다. 우리 정부의 역할은 북한의 생명을 연장하는 링거주사를 놔주는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과 같은 모습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돼야 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촉진자다.
신인균 경기대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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